아이의 비눗방울 놀이
시간이 날 때마다 나와 아내는 아이와 함께 이것저것을 함께하며 아이에게도, 그리고 서로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아이는 작은 것에도 쉽게 몰입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중에서도 요즘 아이가 즐거워하며 몰입하는 것을 꼽자면 단연코 비눗방울이다.
아이가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비눗방울 채에 비눗방울을 투덕투덕 묻히고는 나름의 세심함을 발휘해 조심스레 들어 올린 뒤 비눗방울을 만들어내기 위해 채를 살살 흔들어댄다. 거의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하고 중간에 터져버리고 말지만 열에 한두 번은 성공적으로 비눗방울을 만들어낸다.
쉼 없이 몰입하며 끊임없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가면서 어렵사리 성공해낸 한 두 번의 동그란 비눗방울을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뻗어 터트린다.
아이가 몰입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인간은 창조의 욕구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요즘 아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내가 해볼게"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만들어내고자 애쓰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의 창조적 욕망의 내재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저 어린아이조차도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해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 그 욕구를 잘 보살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일궈나가는 기쁨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돕는 일이 부모 된 도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늘 그러하듯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어떤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면 기쁜 중압감이 느껴진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필연적으로 묵직함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동시에 기쁨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삶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일련의 과정은 곧 창조와 사랑이라는 위대한 가치를 실현해내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토록 애를 써가며 무수한 실패 끝에 어렵사리 완성해 낸 비눗방울을 아이는 어찌 아무렇지 않게 터뜨릴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성인이었다면 쉽사리 그런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성취에 예민하며 목말라 있는가. 본인이 이룬 작디작은 성취에 도취되어 행여나 그것이 바스러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많이 목격해왔는가. 아이의 행동과 어른의 행동 이면에는 어떤 이유가 있기에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이유는 무슨 이유,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벌이는 아이의 무의식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또는 움직이는 것에 반사적으로 손을 뻗는 아이의 행동양식 때문이라고 쉽게 결론지어도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같은 물을 마시면서도 독사는 독을 만들어내고 젖소는 우유를 만들어내듯,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것을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별 볼일 없는 아이의 비눗방울 터뜨리기에도 의미를 한 번 불어넣어보자. 그것은 무채색의 삶을 유채색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일 테다.
아이가 어른들과 달리 어렵사리 성취해낸 것을 쉽게 허물어버릴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인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성인이 자신의 성취를 허물기 어려운 이유는 앞으로 내 인생에 남아있는 성취가 얼마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능력, 남아있는 시간, 주어진 환경, 살아온 삶의 패턴, 이미 고정되어 버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조건들, 그러한 것들을 이미 파악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 내 인생에 남아있을 성취라는 것들이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에 지금 손아귀에 쥐고 있는 성취를 섣불리 놓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비눗방울을 쉽게 터뜨릴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무한히 사랑받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성인들은 실수나 손실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한다. 실수하더라도, 가진 것을 잃어버리더라도 나를 무한히 사랑해줄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고 나면 한 줌도 되지 않을 세속적 욕망들에 집착한다. 쥐고 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존재만으로도 사랑받고 비눗방울이 떨어지면 언제고 웃으며 무한히 채워주리라 기대될만큼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가 언제나 곁을 지켜주고 있다. 그토록 든든할진대 어렵게 성공해낸 비눗방울쯤이야 터뜨리면 어떻고 날려 보내준들 어떻겠는가.
결국 사랑이 옳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받는 마음. 조건 없는 사랑, 무한한 사랑. 오직 사랑만이 모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든다. 우리가 삶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어쩌면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이대로 죽을 순 없다"와 "이대로 죽어도 좋아"는 결국 얼마큼 사랑받았느냐에 의해 판가름될 최후의 변론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