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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불편한 편의점

호의와 연대를 말하다

by 정 호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따듯하다. 특별하거나 대단하지 않은 보통의 우리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그런 책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편의점이라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이야기. 등장인물 각자의 사연을 하나씩 개봉하며 저자는 위로의 도닥임을 독자에게 보내고 독자는 공감의 끄덕임으로 보답한다.


이야기는 총 8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챕터는 한 명의 인물을 조명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와 닮아있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교사로 정년퇴직을 하여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남편이 남긴 유산으로 작은 편의점을 차려 사회에 작은 보답을 하고자 하는 편의점 사장님 염영숙, 아르바이트를 준비하며 공무원 준비를 하는 시현, 못난 남편과 아들을 둬 평생 속앓이를 하는 주부 오선숙, 힘없는 40대 가장 경만, 은퇴한 배우이자 작가 인경, 편의점 사장의 사고뭉치 아들 민식, 퇴직한 경찰이면서 흥신소를 운영하는 곽 씨, 그리고 그들 모두를 연결하는 불편한 주인공 독고. 불편한 편의점은 이들 여덟 사람 각자의 이야기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어떤 공통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산해진미 도시락>

책의 배경이 되는 불편한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장님과 책의 주인공인 독고의 만남을 그린다. 편의점 사장 염영숙 여사는 딸의 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고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우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디에서 파우치를 잃어버렸는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이 낯선 번호로 한통의 전화가 온다. 자신의 가방을 주웠다는 어수룩한 말투의 상대와 통화를 끝낸 뒤 염영숙 여사는 서둘러 서울역으로 되돌아간다. 서울에서 자신의 파우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노숙자들과 몸싸움까지 벌이는 독고를 보며 염영숙 여사는 감사함을 느낀다. 사례금을 받지 않는 독고에게 보답하기 위해 염영숙 여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으로 독고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언제든 좋으니 와서 도시락을 공짜로 먹으라고 한다. 때마침 편의점의 새벽타임 아르바이트생 성필 씨는 좋은 일자리가 생겨 그만두게 된다.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까 고민하던 염영숙 여사는 독고에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줄 것을 권한다. 그렇게 독고는 서울역에서 편의점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기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호기심과 불편함을 동시에 자아내며 수많은 연쇄작용의 시발점이 된다.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공무원 준비를 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유지를 하는 시현의 이야기. 화장품 가게, 택배 회사, 커피숍, 갈빗집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는 모두 섭렵한 시현이지만 언제나 진상과의 마주침은 불편하다. 편의점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지라 단골 진상이 존재했고 그것은 시현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함에 있어 최대의 골칫거리였다. 그런 시현에게 독고는 구세주였다. 진상을 통쾌하게 쫓아내 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친절함이라는 재능을 발굴해 유튜버로 데뷔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다. 심지어 시현의 유튜브를 본 편의점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는 다른 사장님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매장의 지점장이 되어 달라는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게 된다. 그렇게 공무원을 꿈꾸던 한 청년은 우연한 만남과 그로 인해 찾아온 기회에 새로운 도전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삼각김밥의 용도>

집 나간 남편과 놈팡이 아들이라는 이해 불가한 두 남자 때문에 화가 많이 쌓인 주부 오선숙의 이야기. 삼각김밥을 훔쳐 달아나려던 청소년과 마주하며 모멸감을 느껴야 했던 자신 앞에 갑작스레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줄 뿐 아니라 도둑으로부터 사과까지 이끌어낸 독고에게 갑작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한참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며 시원함을 느낀 선숙은 자신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시원해졌듯 아들 역시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을 거라는 독고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는다. 게임중독에 빠진 아들에게 삼각김밥과 편지를 함께 건네 보라는 독고의 해결책에 선숙은 아들과 화해의 물꼬를 튼다.


<원 플러스 원 >

지친 40대 가장 경만의 이야기. 열심히 살아본다고 발버둥 쳐봤지만 회사와 가정 양쪽 모두에서 찬밥신세인 경만, 그의 유일한 낙은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 세트로 자신을 위로하는 것뿐이다. 외로운 그에게 독고는 옥수수수염차를 권하며 알코올 의존을 줄이기를 권유한다. 쌍둥이 두 딸이 원 플러스 원 행사를 할 때에만 초콜릿을 사 먹으러 오며 그 이유는 아버지가 고생해서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독고는 경만에게 전한다. 쌍둥이 딸이 좋아하는 원 플러스 원 초콜릿이 내일부터 다시 행사를 시작한다는 독고의 말에 경만은 초콜릿을 집어 들고 따듯해질 가정의 품으로 돌아간다.


<불편한 편의점>

은퇴한 배우이자 작가 인경의 이야기. 원주 박경리 토지문화관에 묵으며 작가로서 마지막 도전을 시도했던 인경은 그곳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희수와 귀한 만남을 갖게 된다. 희수는 인경에게 대학생 딸의 전셋집을 방학기간 동안 집필실로 사용해달라는 넓은 배려가 담긴 부탁을 가장한 제안을 한다. 나이는 먹어가고 어쭙잖은 작가 데뷔 때문에 오히려 배우와 작가 양쪽 세계 모두에 속하지 못하게 되는 인경은 자신의 삶이 소진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도전해보고 안되면 깔끔하게 포기하겠다는 생각으로 집필실로 발을 옮긴다. 밥을 해먹을 시간도 아까운 탓에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먹곤 한다. 그곳에서 마주한 독고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일생의 대작을 써낸다. 왠지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많이 녹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네 캔에 만 원>

편의점 사장의 아들 민식의 이야기. 초등학교 야구단 입단에 실패, 지방 캠퍼스로 대학을 간 것, 이른 성공으로 자만심에 빠져 결국 커다란 경제적인 손실을 본 것, 이혼과 비트코인 투자 실패. 민식은 어디서부터 자신의 삶이 꼬이기 시작했는지 과거를 들추며 한방을 노린다. 믿을만한 후배 기용에게 수입맥주 사업을 제안받고 어머니의 편의점을 팔아 자신의 사업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매몰찬 거절에 민식은 그것을 모두 독고의 탓으로 돌린다. 화가 난 민식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어머니의 편의점에 때마침 진열되어 있던 기용이 말한 수입맥주를 사들고 어머니의 집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엄마와 술을 주고받으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민식은 오랜만에 가족의 따듯함을 느끼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진 못했지만 왠지 앞으로 엄마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품게 된다.


<폐기 상품이지만 아직 괜찮아>

퇴직한 경찰이자 흥신소를 운영 중인 곽 씨의 이야기. 노숙자 독고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민식은 흥신소 곽 씨를 고용한다. 곽 씨는 며칠간 독고를 미행하지만 그저 끝없이 걸어 다니기만 하는 독고로부터 별다른 정보를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무례한 남자에게 다가가 점잖게 혼쭐을 내주는 독고를 보며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낀다. 며칠간의 미행 끝에 독고가 어느 병원에 들어가 한참 후에 나오는 것을 보고 독고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병원에 들어가 원장을 찾는다. 하지만 경찰을 사칭하는 그를 단박에 파악한 원장에게 빌미를 잡혀 오히려 독고가 머무는 곳을 알아오라는 협박을 받게 된다. 피곤한 곽 씨는 돌아오는 길에 경비원 일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소주를 한잔 기울인다. 하지만 친구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비참한 노년의 자신의 인생을 확인할 뿐인 곽 씨는 친구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독고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향한 곽 씨는 주섬주섬 맥주 네 캔을 주워 든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독고는 맥주를 한 캔 바꾸면 네 캔에 만원이라며 무려 3천 원을 아낄 수 있다는 팁을 전한다.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는 곽 씨에게 열풍기와 핫바를 가져다준 독고를 바라보며 곽 씨는 눈물을 흘리며 참회한다. 자신의 정체를 깨닫게 된 독고는 자신이 곧 편의점을 떠난다며 곽 씨에게 본인 대신 야간시간 아르바이트를 맡아줄 것을 권한다.


<ALWAYS >

독고의 이야기. 독고라는 이름은 본디 독고의 것이 아니었다. 독고가 노숙을 시작하며 알게 된 어느 한 노인, 독고에게 노숙자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친절히 알려주었던 노인이 죽어가며 내뱉은 본인의 이름이 바로 독고였다. 독고는 그렇게 노인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고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우연히 마주한 어느 모녀를 바라보며 자신의 가족과 기억들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등장인물 모두와의 일화가 독고의 시점에서 다시금 펼쳐지며 노숙자가 되기 전 독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의료사고로 병원과 가족 양쪽에게 버림받은 독고는 자신 때문에 죽은 환자의 추모공원에 다녀와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모든 기억이 되살아난 독고는 자신의 과거를 사죄하기 위해 코로나 시국의 대구로 의료봉사를 하러 떠난다. 그렇게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독고의 이야기도 끝이 난다.


사장님과 면담을 했다. 아주 사적인 퇴사 이유를 그녀는 묵묵히 들어주었고, 궁금증이 풀린 것만으로도 나를 이해해주었다.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 243P


편의점을 배경으로 모든 등장인물은 재충전을 하게 된다. 불투명한 미래를 조금씩 색칠해 나가고(시현, 인경) 어긋난 관계를 바로잡고(선숙, 경만, 민식) 뒤틀린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며(곽 씨, 독고) 새롭게 살아갈 의지를 다진다. 각박하고 팍팍한 현실이기에 작가는 소설 속에서나마 따듯함을 전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1인 가구가 늘어가고 다양한 형태의 외로움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독고들에게 작가는 두 가지 마음을 갖고 살아가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는 결코 혼자 있지 말 것, 둘째는 호의가 호의를 낳으리라는 강력한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어딘가에 나의 문제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해주거나 새로이 들여다보게 만들어줄 대상이 있으리라는 생각. 그러니 혼자 있지 말고 반드시 어떤 울타리, 기왕이면 따듯한 사람들이 있는 울타리를 찾아 들어가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 먹먹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기왕이면 호의를 베풀며 살아가자는 마음.


나날이 다양해지는 각종 혐오의 스펙트럼은 너와 우리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고 오직 나만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더욱 깊은 증오의 늪으로 개인을 끌어당겨 개인을 더욱 잘게 부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힘든 싸움을 하고 있으니 우리는 친절해야 한다는 말은 저자의 이 두 가지 생각의 바탕이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싸움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있어서는 안 되며 서로를 따듯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어야 한다. 그것이 연대이자 사랑이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죽기 전에 소설 한 권을 꼭 쓰고 죽고 싶다는 바람 때문인지 소설을 읽다 보면 언젠가부턴가 소설의 형식적인 구성에도 관심이 생겼다. 모든 챕터의 주인공들이 독고를 중심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며 각 챕터가 마무리된다는 점이 책의 공통된 진행 방식이며 각 챕터의 제목이 편의점에 있는 것들과 관련이 있다는 점 또한 재미있다. 또한 각 장의 마지막 장면은 의도적으로 편의점에 있는 것들을 먹으며 마무리 짓는데 예를 들면 영숙과 독고는 소주잔을 부딪히며 끝이 나고 영숙과 시현은 붕어빵을 씹어먹으며 끝나며 곽 씨와 독고는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며 끝나는 식이다. 단순히 편의점을 배경으로만 활용한 것이 아니라 편의점에 있는 물건들을 적재적소에 이야기의 소재로 활용한 점이 책의 가독성을 높이는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에게 소설의 배경인 편의점은 불편한 공간이었다. 사장님 영숙은 의무감에 겨우겨우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시현에게는 진상과 마주하는 공간, 선숙에게는 독고라는 불편하고 이해 못 할 인간이 존재하는 공간, 경만에게는 초라한 자신의 신세를 확인하게 만드는 공간, 인경에게는 제대로 된 상품 구성이 갖춰져 있지 않은 불친절한 공간, 민식에게는 빨리 처분해서 자신의 사업자금을 마련해야 할 공간, 곽 씨에게는 타깃이 일하고 있어 조심스레 살펴야 할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결국에는 편의점 덕분에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 이전보다 더 힘차게 인생을 꾸려갈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불편한 존재들이 우리에게는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책은 역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꽤 묵직한 여운을 느끼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2권도 나왔다는데 언젠가 찾아 읽게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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