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도 사람이야

네 말이 맞다

by 정 호
아들: 엉엉... 아빠가 자꾸 나를 괴롭혀

아빠: 괴롭히는 게 아니라 아들이 잘못한 걸 알려주는 거야

아들: 아니야 엉엉... 아빠 미워

아빠: 왜 자꾸 울지? 용사는 울지 않는데?

아들: 용사도 사람이야


아이는 자신을 용사라고 칭한다. 악당들을 물리치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며 언제나 정의롭고 누구보다 강력한 정의의 용사. 그렇게 어느 날은 펜타스톰 엑스가 되었다가 어느 날은 한글 용사가 되고 또 어느 날은 슈퍼 마리오가 된다.


나중에 커서 경찰이 될 것이라며 나쁜 악당을 잡아 감옥에 넣겠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아이의 입술을 바라보며 그저 미소를 짓는다. 용사를 부르짖던 입술은 잘못을 저질러 훈육을 받으며 이내 삐죽삐죽 씰룩씰룩 앞뒤 양옆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눈물과 함께 으앙 소리를 내며 점점 더 크게 벌어진다.


용사도 사람이라며 울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용사와 분리시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재미있기도 하다.


한때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유쾌한 사람이고 싶었고, 이끄는 사람이고 싶었으며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디 그뿐이었을까, 책임감 있는 사람, 유능한 사람, 발이 넓은 사람, 잘 노는 사람, 배려심이 깊은 사람... 좋은 사람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갖추고 싶어 아등바등거렸던 때가 있었다. 아이와 다를 바 없이 나 역시 용사가 되고 싶었던 셈이다.


나 역시 힘들어서 엉엉 울면서도 좋은 사람이라는 이상향에서 나의 정체성을 분리시키지 못하고 이런저런 합리화를 시도했었다. 내 유머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에겐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내가 도움을 줬음에도 심드렁해하는 사람에겐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평가했다. 애초에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뿐더러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왜 우리 모두 용사가 되고 싶지 않으랴. 그 멋들어진 존재에 가닿고 싶은 욕망이 없으랴. 다만 그것은 내 존재에 대한 과신이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무지의 결과일 테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용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나를 포함하여 내 인생에 소중한 몇 사람에게 용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의 멋짐을 스스로 알아차릴 것, 그거면 됐다. 네 말대로 용사도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