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이건 모두 응원받을 가치가 있지만 우리 모두가 특별히 그리고 기꺼이 응원하고픈 어느 한 시절이 있다.
청춘, 몇 살부터 몇 살까지라고 선을 주욱 그을 수 없는 그 시절은 불안과 혼란의 감정에 가장 취약한 시절이자 성인이라면 누구나 지나온 시절이기에 우리의 눈길을 손쉽게 끌어당긴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여상을 졸업한 다섯 명의 친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그린다. 처지의 차이, 경제력의 차이, 사회진출 시기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생각을 품게 되며 그로 인해 때로는 의도치 않은 상처를 서로에게 주면서 마음과 달리 조금씩 서로에게 서운함이 쌓여간다.
혜주(이요원)는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증권사에 취직해 직업인이 된다. 어른의 세계에 친구들보다 먼저 발을 들이밀고 경제활동을 하며 현실에 부딪히는 혜주는 갓 스물의 어린 나이에 그렇게 깍쟁이가 되어간다. 회사에서는 가장 낮은 지위이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유일하게 번듯해 보이는 직장에 다니고 있는 탓에 은근한 우월감을 뽐내기도 한다.
고등학생 때 혜주와 단짝이었던 지영(옥지영)은 졸업 후 혜주와 반복되는 갈등 속에 점차 소원해지게 된다. 혜주의 말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고 혜주의 행동 또한 자꾸 거슬리기 시작한다. 혜주가 의도적으로 지영을 괴롭히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영은 혜주의 말과 행동을 점점 참을 수 없게 된다. 지영의 마음은 지영이 처한 환경의 비틀림과 함께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다니던 회사는 망해서 문을 닫고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은 무너져내려 유일한 가족인 조부모마저 앗아간다.
둘의 위태로운 관계를 중간에서 이어주는 사람은 태희(배두나)다. 태희는 모두에게 친절하다. 장애가 있는 시인 남자친구를 만나고, 같이 놀자며 접근하는 동남아 청년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인다. 얼핏 보면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는 혜주와도 부딪힘 없이 잘 지내고 친구 사이의 갈등을 빠르게 알아차려 봉합하기 위해 애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지영의 마음속 뒤틀림을 살뜰하게 살피기 위해 연락이 되지 않는 지영의 집에 찾아가 지영의 할머니가 내어주는 만두를 꾸역꾸역 삼키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성인이 된 이후 맺게 되는 관계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반드시 어떤 목적을 띠고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업에 도움이 되거나 소속되는 것만으로도 어떤 유, 무형의 이득 혹은 가치를 생각하며 어른들은 여러 모임에 발을 담근다.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기에 한번 들어간 모임에서 발을 빼는 것이 쉽지 않다. 여러 사람이 모여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모임들을 생각해 보면 어느 모임이건 혜주, 지영, 태희와 같은 친구들이 존재한다. 자기애가 넘쳐 자기 자랑을 들어줄 들러리가 필요한 사람, 상황이 안 좋아져 점점 남의 말과 행동이 불편해지는 사람, 맑고 순순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기를 좋아하는 사람.
우리는 관계 안에서 혜주와 지영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무언가 잘되는 시절에는 혜주가 되었다가 무언가 안 풀리는 시절에는 지영이가 된다. 태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주변에 태희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사람의 마음을 살뜰히 살필 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은 점차 남에게 관심이 사라진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 모임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조건이 형성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그룹인 탓에 사회에 나와 생성된 조건들이 일정 부분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가령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게 되었거나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둬 친구들에 비해 형편이 훨씬 좋아진 경우에 그들이 사회에서 만나 형성하는 그룹에 비해 그들의 성취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는 어떤 이에게는 동심과 평온을 가져다주지만 어떤 이에게는 불만과 짜증을 가져온다.
청춘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청춘이 정말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 이렇다 할 경험이 없다는 것, 내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스무 살이 겪어야 할 통과의례다. 어쩌면 진짜 사춘기는 중학교 2학년이 아니라 스무 살에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무 살의 불안과 스무 살의 고민이 담담하지만 사실적으로 녹아있는 영화다.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탓에 20년의 세월이 지난 뒤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개봉을 했으리라.
상황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여러 번의 변화의 과정 속에 여전히 곁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서서히 연락이 뜸해진 친구들도 있다. 영화 속 혜주와 지영이처럼 특별한 다툼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불편하고 왜인지 마음에 들지 않아 차라리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편해진 그런 관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시절은 여전히 아련하다.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금 서로를 찾는 날이 오리라 믿으며 그 시절의 우리를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