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그 말

당연하고도 당연하지 않은

by 정 호

저녁을 먹은 뒤 안방에서 아들과 장난을 치던 중이었다.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까스로 눈을 뜨고 있는 아빠와 노는 것이 재미없어졌는지 아들은 슬그머니 등을 돌려 거실로 나갔다. 드디어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 때문인지 아이의 뒷모습이 갑자기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어 기어코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아이를 불러 세웠다.


아빠: OO아

아들: 응? (뒤를 돌아보며)

아빠: 사랑해~

아들: 응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사랑한다는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제 갈길을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생각에 대견함과 안도감이 밀려온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말이나 행동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전달받아본 기억이 없다. 그저 무뚝뚝하고 표현이 서툴러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다는 아버지의 뒤늦은 고백에도, 먹고살기 바빠 그 시대를 살아온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일터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며 상대적으로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어린 시절의 채워지지 못한 감정의 공백은 나이를 먹어도 쉽사리 메워지지가 않았다. 아버지의 사랑이 메마름으로 상징된다면 어머니의 사랑은 불안을 떠오르게 했다. 어머니는 늘 나와 동생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지만 그 사랑은 불화와 폭언 뒤에 찾아오는 일종의 감정적 땜질이었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의 사랑을 온전한 사랑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오락가락하는 그녀의 모습으로 인해 불안이 싹트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른들은 부끄러운 것이 많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상처를 드러내는 것도, 단점을 드러내는 것도,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모두 부끄러운 행위에 속한다. 미숙함으로 정의되는 모든 언행은 그렇게 부끄러운 행위로 치부되며 드러내서는 안 될, 감추고 살아야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게 어른들은 괜찮지 않은 자신의 내면을 포장하고 숨기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감정의 둑이 터지는 순간이면 그야말로 어린아이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이젠 장성해서 혼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감정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자란 어른은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에 마음이 휘청거린다. 밉지만 미워할 수가 없고, 원망하지만 용서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 그것은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갖춰야 할 덕목인 것처럼 세상이 나를 옭아매기 때문이기도, 때로는 젊은 시절 부모의 강퍅한 모습과 대조되는 구부러진 모습에 연민의 마음이 자연스레 품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노건 연민이건 결국 그런 감정들의 근원은 결핍이다.


미워하지만 사랑해야 할 것 같고,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속박되는, 사랑을 느끼기 어려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그렇게 속절없이 흔들리는 나약하고 불안한 내면을 자식의 마음속에 심는다.


사랑한다는 부모의 말 한마디에 온갖 감정의 폭풍을 견뎌내는 나와 달리, 그저 씩 웃으며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의 내면에 당연하고도 안정적인 사랑의 형태가 제대로 자리 잡았음을 느낀다. 불안이 없는 평온한 내면을 바탕으로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길. 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그릇이 넓은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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