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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Sep 09. 2023

아빠한테 다 배웠어

고마운 그 말 

아빠: 와~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 먹었네 많이 더웠어?

아들: 응 목말랐어

아빠: 아이스크림 잘 먹는 것처럼 밥도 골고루 잘 먹어야 돼

아들: 응 골고루 먹어야 키도 크고 몸이 튼튼해져

아빠: 맞아

아들: 그리고 병원도 안 가고 힘도 세져

아빠: 이야~ 잘 알고 있네 그런 건 어떻게 알게 됐어?

아들: 아빠한테 다 배웠어


"덕분"과 "때문"은 그 앞에 나올 단어에 의존해야만 쓰임새를 발휘할 수 있는 탓에 형식적으로는 유사함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의미가 지향하는 지점이 전혀 달라 가용되는 맥락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덕분과 때문 둘 앞에 "너"라는 단어를 배치해 보자. '네 덕분에'와 '너 때문에'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발산한다. 전자는 감사함을 지향하고 있지만 후자는 원색적인 원망과 비난을 목적으로 한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다 아빠한테 배웠다"는 말을 듣고 감사함을 느낀 이유는 아이의 말이 차가움이 아닌 따듯함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을 잘 먹어야 여러모로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은 부모뿐 아니라 교육기관, 미디어를 통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식상하고 재미없는 말이었을 테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것들을 실행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골고루 먹어야 된다고 하면 먹기 싫은 음식도 먹어보려 애쓰고 빨간불에 건너면 안 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기에 빨간불에 길을 건너는 사람을 볼 때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어? 어? 어?'를 외친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알고 있는 것의 기원이 아빠라고 말해주는 아이의 따듯함에 세상을 다 가진 듯 마음이 들뜬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아이의 말 한마디에 이토록 마음이 부풀어 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아이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무게감을 느낀다. 늘 그렇게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관계로 남아 있을 수 있기를, '때문'보다는 '덕분'을 더 자주 주고받을 수 있기를, 아이의 작은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의 말을 마주하며 그렇게 감사와 기대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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