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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Sep 27. 2023

세 자매

각자의 최선

목사님 말고 우리한테 사과하세요


어떤 상처는 평생토록 아물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일수록 더 그렇다. 영화 "세 자매"는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자녀들이 고군분투하며 살아내는 삶을 그린다.


'그때는 다 그랬다'는 말만큼 폭력적인 말이 또 있을까. 시대와 장소에 따라 삶의 형태와 의식 수준이 달라지는 것은 진화의 과정과 유사하여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당시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분명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다. 정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낸 4남매는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방어기제를 발동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발동된 방어기제는 점차 단단해지 그녀들의 인생 전반을 아우르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 첫째는 굴종하는 태도를, 둘째는 종교에 의탁을, 셋째는 중독을 택한다. 겉으로 보기에 달라 보이지만 세 자매가 선택한 각자의 방식은 모두 자신의 삶 파괴다는 데 있어 궤를 같이 한다.


째는 늘 기가 죽어 있다. 혼외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본가족에 편입되어야 했던 첫째는 언제나 눈치를 봐야 했으리라. 아버지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폭력이라는 잘못된 형태로 표출한다. 폭력의 대상은 주로 혼외자인 첫째 딸과 막내아들이 된다. 첫째는 그렇게 언제나 죄인이 된 듯한 태도로 비굴한 사과를 하며 상황을 모면하려 하려는 태도를 습득하게 된다. 꽃집을 운영하며 근근이 벌어들이는 생활비를 무뢰한 같은 남편에게 갖다 치고 온갖 굴욕적인 말로 남에게 치욕을 당하면서도 그녀는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손님 앞에서도, 남편 앞에서도, 철없는 자식 앞에서도 그녀는 화를 내거나  하고픈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 감정이 고조될 대로 고조된 가족 식사 장면에서도 수십 년간 고여있던 마음속 상처를 드러내는 다른 자매들과 달리 그녀는 그만하자고, 비싼 돈 내고 빌린 식당인데 아까우니 밥이나 먹자며 꾸역꾸역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다. 녀의 력함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되어 자녀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늘 무기력한 엄마를 보며 자란 첫째의 딸은 철부지 반항아가 된다.


둘째는 매 맞는 큰언니와 막내 남동생을 바라보며 힘에 대한 망을 갖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돈과 종교라는 강력한 구원자에게 삶을 의탁한다. 교수 남편과 결혼하고 넓은 아파트에 살면서 대형 교회의 간부 생활을 하는 그녀는 언뜻 보기에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렇게 되기까지 그녀는 아마도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스스로를 채근하고 억제하며 살아왔을 테다. 그런 금욕적이고 엄숙주의적인 생활양식은 남편을 지치게 만들고 자녀들에게 과도한 신앙심을 강요한다. 시도 때도 없는 기도와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자녀를 방에 감금까지 하는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폭력에서 파생된 또 다른 폭력을 자기 자녀들에게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셋째는 백일몽과 중독에 빠진다. 팔리지 않는 글을 쓰고 취하지 않은 날보다 취해있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술독에 빠져 있다. 그러다가 자신을 예뻐해 주는 적당히 안정적인 남자를 골라 결혼을 한다. 제멋대로인 그녀를 받아줄 사람은 세상에 오직 자신 한 사람밖에 없다는 듯, 그녀의 남편은 바보 같을 정도로 순종적이고 헌신적으로 셋째를 보살핀다.


첫째의 굴종은 반항을 낳았고, 둘째의 금욕과 억압은 두려움을 낳았다. 그렇게 자매들은 자신들이 어린 시절 당했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생산해 대물림한다.


건강하지 못한 부모는 건강하지 못한 자식을 만들어낸다. 금쪽이가 판을 치는 것은 요즘 애들이 문제여서가 아니라 요즘 애들의 부모가 문제인 탓이다. 피나는 노력으로 스스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타고난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자신을 둘러싼 한계를 깨부수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이전의 자신보다 건강해질 수 있다.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 더욱더 암담한 좌절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할 테지만 인간 이상 발버둥 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을 찾기 어다.  이상 우리의 아이들이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어른들의 치열한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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