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철학자는 문인과 과학자 그 사이 어디 즈음에 위치한 존재이다. 혹은 그 둘을 섞어 놓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어떤 개념과 사념에 대해 깊이 고민하여 통찰을 얻고 그것을 철저한 과학적 논증의 과정을 거쳐 분석해 낸 결과를 비유와 상징, 그리고 구체적인 언어를 활용해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자는 때로는 과학자처럼, 때로는 언어학자처럼, 때로는 시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선배 철학자들의 지혜를 빌려 피해의식에 관해 자신만의 언어로 구체적이고 농밀한 목소리를 내게 되어 드디어 한 사람의 철학자이자 단독자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그의 사유와 경험이 충분히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낼 만한 논리를 구축하였음을, 마땅한 근거를 충분히 수집하였음을 입증하며 설득력을 갖는다.
피해의식이 야기시키는 문제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의식에 휩싸인 사람의 시야를 가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고 확대하며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았다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라고 끊임없이 자기 세뇌를 반복하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고,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도 즉각적으로 자신의 고통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 피해의식은 그래서 개인적, 사회적으로 모두 해를 끼치는 무시무시한 사고과정이라고 작가는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통해 힘주어 말한다. 눈뜬장님은 답 없는 인생을 살게 되는 셈이다. 눈을 잃는다면 우리의 삶은 한순간에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피해의식에 빠진 사람들은 마음의 눈을 잃은 셈이다. 마음을 써서 들여다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피해의식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은 끊임없이 생산된다. 그리고 그 영혼들은 뒤섞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줄도 모른 채 지속적으로 상처 주며 살아간다. 이전 세대의 피해의식이 주로 폭력으로 발생했다면 현세대의 피해의식은 주로 과보호에 의해 발생한다. 과거의 피해의식이 "두들겨 맞은 내가 너무 불쌍해"라는 자기 연민을 불러왔다면 현재의 피해의식은 "나 이거 엄청 아픈 거랬어"의 방식으로 표출된다.
인간의 내면은 복잡하다.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을 발생시키는 요소도 너무 많고 같은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내 안에 심어진 씨앗에 따라 발현되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한다. 내적 외적 변수와 상황들을 모두 통제할 수 없기에 우리 인생은 반드시 어떤 고난의 지점을 넘어서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 고통에 짓눌린 채 삶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 책은 피해의식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장벽을 철저하게 파헤치며 원인과 해결 방법에 대해 논증한다. 누군가가 진심과 진력을 다해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해답을 그려내놓았다면 우리가 해야 되는 일,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해진다. 그의 사유를 읽어내고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된다.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커다란 하나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기꺼이 돕겠다고 발 벗고 나서는 친절한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피해자이면서 어느 정도 가해자다. 세상에 절대적인 피해자와 절대적인 가해자는 없다는 것, 피해의식의 형태와 성질을 낱낱이 분석하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나를 살리고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분명하고 강력하게 말한다.
호네트의 이론 중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호네트가 인정을 세 가지 형태 '사랑', '권리', '연대'로 구분한 대목이다. '사랑'은 원초적 관계(가족, 연인, 친구)의 인정이고, '권리'는 권리 관계(직장, 마을, 공공장소)의 인정이고, '연대'는 가치 공동체 관계(정당, 시민단체)의 인정이다. -중략- 이 세 가지 인정은 인정투쟁을 통해 순차적으로 배열된다. 이는 쉽게 말해 '사랑'이 없다면 진정한 권리도 인정받을 수 없고 진정한 연대 역시 불가능하다는 진단인 셈이다. - 피해의식 374p -
가화만사성, 모든 일의 뿌리는 가정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옛 고전들도, 철학자도, 정신분석학자도, 의사도, 교사도, 심지어 과학자들조차도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인류의 근원은 사랑이고 그 사랑의 근원은 가정이다. 파괴된 모든 것들의 재생은 가정이 바로설 때 가능하고 올바른 모든 것들의 뿌리 역시 가정에서 비롯된다. 가정의 사랑을 빚어내는 일에 게으른 사람들은 세상의 크고 작은 일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는 셈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각각의 생각과 세상의 이치들이 이합집산하는 듯 보인다. 어느 면에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어느 지점에 가서는 서로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