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란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전국교사작가협회 책쓰샘 회원 18인의 교직 에세이 내게 온 사람, 따듯한 제목이다. 책을 열면 만남, 희망, 기쁨 같은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이야기들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고된 교직생활 가운데 가끔 마주하는 기쁜 순간들이 있다. 18인의 교사가 각자 마주했던 그런 기쁨을 모아놓은 책인가 싶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기분으로 허겁지겁 첫 장을 펼쳤다.
교사라는 직업이 마치 신분적 약점이라도 된다는 듯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는 학부모의 무고성 민원 속에서도 눈이 예쁜 선의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무너져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 성희롱을 하는 학생과 대면하며 정신건강의학과, 교권보호위원회의 도움이 무력함을 뼈저리게 깨닫는 모습, 폭력과 절도가 일상인 아이 앞에서 어르고 달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내가 생각했던 책의 이미지와 너무 다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순간 당황스러운 마음이 일렁였다. 이는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이것은 명백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 입은 교사들은 자신이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자기 수양으로 그 고통을 극복해 내려 애쓰고(딱히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해자인 학생은 오직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언제나 면죄부를 받는다. 이는 정의롭지도 올바르지도 합리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은 일이다.
슬픔, 무기력, 허무, 공허, 실망, 배신감, 교사로 살며 매년 느끼는 감정이다. 비단 이 직업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교사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내게 온 사람이라더니 왜 이렇게 슬프고 힘든 이야기가 가득한가 했더니 첫 번째 장 제목이 "위로"였지 뭔가. 급하게 읽기 시작하여 챕터의 제목도 살피지 못했던 것이다. 가히 위로가 될만한 이야기들이었다. 위로의 본질은 남 얘기하듯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런 적 있다는 공통의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겪어봤을 법한 경험들을 솔직한 마음으로 나누어준 작가들 덕에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모두 어디에선가 비슷한 일들을 겪으며 힘든 상황을 각자의 방법으로 이겨내고 있다는 사실에 진심 어린 위로를 받는다.
두 번째 장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아이들과 팝송 합창 대회를 즐겁게 준비했던 이야기, 체육대회를 목표로 1년 동안 따듯하고 단단한 팀워크 아래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 훌륭한 역할모델과 우연한 만남들을 통해 지금껏 성장해 온 이야기, 앞으로도 성장하고 싶다는 이야기,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을 읊조리며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에 기꺼이 소진되고 싶다는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 이는 분명히 희망적이다. 바람을 담고 있고 내일을 기대하고 있으며 소진됨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로 살다 보면 힘든 일도 많지만 보람되는 일 또한 분명 존재한다. 2장의 제목인 '희망'과 3장의 제목 '사랑'은 그런 일들, 사랑스럽고 보람되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의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세상에 고되기만 한 일이 어디 있고 즐겁기만 한 일이 어디 있으랴. 그 비율의 기울어짐 때문에 우리는 종종 한쪽 측면이 마치 전부를 차지하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지만 사건과 사람, 그리고 직업에 이르기까지 세상사 모든 일은 언제나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우리가 깨어서는 꿈을 꿀 수 없고 수면 중에는 현실을 자각하기 힘들듯이 그 양면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고통의 시간 속에서는 그 고통이 영원할 것처럼, 기쁨의 순간에는 그 기쁨이 영원할 것처럼 그 얕은 인식의 오류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 자체만으로 여러 위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때로는 따듯한 위로를 건네고 때로는 뜨거운 열정을 심는다. 어떤 이야기는 꿈을 꾸게 만들고 어떤 이야기는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어떤 이의 경험은 나를 자극시키고 또 다른 어떤 이의 경험은 존경심을 자아내게 한다. 여러 감정을 환류시키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연결시킨다.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때로는 큰 위안을 얻을 때가 있다. 내게 온 사람은 그렇게 내게 온 한 권의 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