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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Sep 07. 2020

자존의 뿌리

충실한 삶에 대한 보상

자존심 부리지 좀 마

자존감이 높네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두 문장만 두고 봐도 자존심과 자존감이 얼마나 다르게 사용되는지 느낌적으로 알  있다. 이치나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객기를 부리거나 괜히 남에게 지기 싫은 마음에 부려보는 허세 등을 목격할 때 우리는 자존심만 센 사람이라고 해당 인물을 평한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21세기 젊은이들의 뜨거운 관심거리 중 하나이다. 성취의 가능성이 다방면으로 좁아지고,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달콤한 성공의 경험을 맛보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어가는 현실 속에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청년들의 노력은 필사적이어서 눈물겹다.


일찍이 이것을 눈치챈 매체는 이를 이용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탕이 듬뿍 발린 달콤한 이야기를 하며 모든 것이 괜찮다며 그대로 있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마냥 괜찮다는 식의 타인의 위로로 존재하지 않던 자존감이 갑자기 생겨나게 될까?


매체의 최상위에서 방송 송출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정말로 대중들에게 괜찮다는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어서 그런 류의 방송을 그렇게도 많이 편성하는 것일까? 그런 선의의 마음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시청률이 잘 나오고, 그것은 실패하지 않는 장사라는 계산이 섰기에 나오는 결정은 아닐까? 사업을 꾸려가는 리더는 딸린 식구들을 위해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사업가 마인드. 리더의 마인드다. 


힐링과 위로는
현대인에게 잘 먹히는 사업 아이템이다.


우리는 책이나 강의 등 다양한 매체에서 쏟아지는 사탕발림에 넘어가고 있다. 이는 마치 매트릭스라는 영화의 주요 장면으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진실과 고통빨간약 거짓과 평온의 파란 약 중 파란 약을 골라먹는 것과 같다.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식의 안분지족의 삶은 욕망을 이룰 수 없는 상황, 즉 신분의 제약이 걸려있고 유배지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어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양반들의 입에서 나온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자존감을 세울 수 없다.


존엄이란 스스로 설정한 수준에 부합하는 삶에 도달했을 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며 스스로 설정한 삶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존엄은 자존심이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 "내가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냈을 때 그 사람에게는 존엄한 아우라가 풍겨 나오는 것이고, 스스로를 "내가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때에는 용이되지 못한 이무기처럼 자존심은 존엄으로 승격하지 못하고 자존심으로만 남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크게 공감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존엄이나 자존감은 스로 설정한 레벨에 도달할 때에 획득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개인이 설정한 어느 지점, 즉 개인의 노력으로 성취를 해냈을 때 싹 틔울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나의 노력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에서야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 조정래

땅 끝에 닿아본 사람만이 지도를 그려낼 수 있듯 한계치에 닿아본 사람만이 스스로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다. - 김이나


산의 정상까지 가본 사람만이 산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여기서 산의 정상이란 성취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성취를 향해 달려본 경험을 뜻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그 분야를 선택해 한 번의 고난도 겪지 않고 큰 성취를 해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처음에는 그 길과 다른 길을 걸었지만 뜻하지 않은 불운을 마주하며 고난을 겪고 잠시 좌절하더라도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아 다시금 에너지를 쏟아부어 자신의 길을 만들어낸다. 배우 키아누 리브스는 어린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를 하다가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접고 연기의 길로 들어섰으며, 톰 크루즈 역시도 미식축구 선수를 하다가 동일한 과정을 거쳐 배우가 된다.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시선이나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세운 기준을 성취해본 적 있느냐는 것이다.


교육학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 작은 성취의 경험을 자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아동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이는 향후 아이가 삶을 살아가며 다방면에 있어 맞닥뜨리게 될 여러 가지 위기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자존감, 회복탄력성과 연결된다.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이 있는 아이는 반드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이것이 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과도 같기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며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심어주고자 노력한다.


결국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돕는 도구와도 같은 이 자존감은 결국 성취를 통해 만들어 내야만 한다.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당장 헬스장에 가서 러닝을 뛰고 오라고 처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하루는 또 무엇을 해내며 살 것인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성취해내는 오늘 하루가 자존감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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