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호 Sep 08. 2020

타인의 일상을 응시한다는 것

영화 더 테이블이 주는 심심한 재미

일상이라는 것은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 한 번 더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 년이 지난 뒤 오늘을 떠올려 보았을 때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 않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일 년씩이나 갈 것도 없이 일주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일상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평온함과 두려움을 함께 가져다준다.


일상이 평온한 이유는
불확실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손실을 두려워한다. 손실은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불확실한 모든 것들은 선택의 순간에 기회비용을 고민하게 만들고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기회비용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을 때,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이 밀려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 끝에 어렵사리 얻어지는 것이 일상임을 깨달은 사람들은 일상의 평온함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불행하게도"에 초점을 맞추어 망각이라는 것이 가진 순기능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반복되는 일상에 감사를 표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남은 일생동안 무한하게 반복될 것만 같은 일상은 때때로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두려움을 심어준다. 이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되기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기대감의 소멸, 본인 능력의 한계치를 깨달았기에 맞닥뜨리게 되는 희박하다고 느껴지는 스스로의 발전 가능성 등이 있겠지만 공통적인 속성은 "지루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독이 든 성배와도 같다.


일상을 일상적이지 않게 잘 포장한 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SNS라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대중화, 그리고 기기 성능의 상향평준화로 인해 우리는 SNS의 세계에 익숙해졌고 가공된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가공된 나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이제는 당연시되었다.


학생들에게 성격, 심리 검사를 할 때 "나는 OO 한 사람이다"라는 질문에 초등학생들이 "이거 어느 세상 물어보는 거예요?"라고 답한다는 김경일 교수의 이야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개의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청소년들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나의 일상과 타인의 일상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모순적인 느낌을 받게 한다. 하지만 SNS는 상업적인 이유로 가공되고 포장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짜 현실이라고 하기엔 다소 어려운 부분이 많다. 실존하지 않는 일상, 아주 작은 부분만을 떼어놓은 일상이기에, 일상의 탈을 쓴 일상이라고 봐야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지만 편리해진 만큼 타인의 직접적인 손길이 필요치 않아지는 세상이기에 우리는 점점 타인의 일상에 무관심해진. 하지만 실상은 어쩌면 무관심하고 싶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주고받고 싶은 시대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럴 필요도, 기회도 점점 사라지는 바람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는 달리 타인과의 접점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다른지 모르겠어. - 더 테이블


영화 더 테이블에서 임수정의 대사 한 마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음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며 응석 부리는 아이처럼 혹은 정신 차리라며 따끔하게 혼을 내는 어른처럼,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들의 가슴 깊숙이 돌직구로 파고 들어온다.


가끔 우연히
타인의 일상을 목격하게 될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카페에 혼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다가 의도치 않게 옆 테이블의 이야기에 귀가 쫑긋해지는 순간을 꼽을 수 있다.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의 관심사가 반영된 이야기이거나, 매우 흥미로운 요소를 포함한 이야기이거나, 혹은 그저 그 사람들의 외관이 시선을 끌만큼 특별 혹은 특이하기 때문일 때도 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누군가에게 비밀이라도 들킨 것처럼 당황스럽기 그지없어 괜스레 음료를 한잔 마시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얼마 전에 본 영화 "더 테이블"이 그랬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곳의 배경만 등장한다. 어느 카페의 한 테이블, 그 테이블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영화의 전부이다. 두 사람씩 네 번, 그러니까 총 8명의 등장인물이 나오고 각자의 삶의 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본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영화였다.


주인공들은, 실제로 옆에 앉아 들었더라면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는 소재로 대화를 나누었다. 영화였지만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법한, 누군가에겐 일상적인 영역의 대화 소재로 사용될지도 모를 주제들이 배우들의 입을 통해 나의 귀로 흘러들어오는 순간, 나는 타인의 삶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묘한 느낌이 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혹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같은 종류의 영화를 좋아한다. 일본 영화 특유의,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그런 감성을 좋아하는데 국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느낌을 받게 되어 좋았다.


매일같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일상을 담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일 쌀밥을 먹으면서 쌀밥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한정된 시간에 다른 것을 소비하는 것이 더 효용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를 낳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그런 일상을 조용히 응시하는 것이 좋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현실이나 문화예술을 통해 일상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는 것, 그것은 힐링이자 위안이며 때로는 반성이자 동기부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가만히 그렇게 또 다른 일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작가의 이전글 본질을 갈고닦을 때 명품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