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은 덕질을 낳는다

ㅡ 중학교 시기

by 선홍

부모가 되어 두려운 것이 있다면 아이의 사춘기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김정은이 못 쳐들어오는 이유가 ‘중2병’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라든가 ‘엄마가 해준 게 뭐 있어!’하고 바락바락 대드는 이미지가 연상되는 것은 비록 나뿐이 아닐 터.

실제로 주변에도 자식과 갈등하는 부모들이 많아 화장에 빠진 딸, 게임에 중독된 아들 때문에 속상하다느니 자주 싸운다는 말을 전해 듣곤 했다.


싸우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부모가 ‘하지 말라’는 것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겠다. 그렇다면 하지 말라는 소리를 안 하면 간단명료하지 않나?

‘말이 쉽지!’라고 쏟아지는 비난이 귀에 마구 들리는 듯한데… 이론이 그렇다는 말이죠, 예.

돌아보면 나도 부모의 잔소리가 딱 질색이었기 때문에 아이에게도 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물론 불쑥불쑥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는 일이 그리 쉽진 않았는데.


아이의 대답도 짧아지고, 툭하면 “어쩔?”하고 내뱉는 말이 재밌다가도 기분이 안 좋은 날엔 거슬렸다.

자존감이 낮으면 아무 의도도 없는 상대의 말에 ‘저게 날 무시해?’ 하는 생각으로 튀어버리기 때문에 심리학 책을 종종 읽으며 ‘셀프 치료’ 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하나 망가지면 그만이지만 자식이 있는 이상 내 문제를 전이시키지 않기 위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관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사춘기 중학생이 되더니 뭔가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바로 ‘아이돌’ 오빠들에게.

초등학생 때 ‘인피니티’를 살짝궁 좋아하는 것으로 시작하더니 ‘exo’에 허우적대다가 ‘방탄소년단’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물론 이후에도 계속 대상이 바뀌다가 현재는 또 다른 그룹을 파는 중이다. 초창기 ‘방탄소년단’에 빠졌을 때 상장되면 주식 살 생각이나 했으면 좋았을 것을 말이다.

‘exo’의 예를 들면 좋아하는 ‘경수’가 나오는 영화의 시사회장도 가고, 드라마도 챙겨봤다. 한 그룹에 좋아하는 멤버가 단 한 명이 아니었음은 물론이요, 이후에도 자잘한 덕질이 이어졌다. 덕질은 계속 덕질을 낳았다

< EXO >

굿즈를 사는 것은 기본, 오빠들 cd가 발매되면 광화문 교보문고로 달려가 줄을 섰다. 요즘 애들이 cd를 듣는다고 생각하면 착각. cd속 오빠 사진을 갖기 위한 노력이었는데, 대부분 좋아하는 멤버 사진이 안 나오기 때문에 처음 본 소녀들과 화기애애한 사진 교환식을 나누고 왔다. ‘포켓몬빵’ 속의 스티커만 갖고 빵은 안 먹는 행위나 다를 바 없었는데.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세트를 사면 오빠들 사진을 주는 이벤트 때문에 사 먹었던 햄버거는 또 얼마였던가.


그러더니 아예 ‘고척돔’ 같은 먼 곳까지 직접 가서 공연을 보고 오기 시작했다. 용돈을 모아 덕질하는 걸 보니 다른 건 다 포기한 듯했는데.

1초면 다 팔려버린다는 공연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속도 빠른 pc방까지 달려가 빛의 속도로 예매에 성공한 후 친구들 없이 혼자 가기 시작했다. 아이돌 취향은 제각각일 뿐 아니라 프로페셔널급의 덕질을 하는 첫째와 맞는 상대가 없었던 모양.

공연 시간에 딱 맞춰 가는 것도 어른들의 세계인지 저녁 공연이면 오전부터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팬들이 핸드메이드 굿즈를 파는 등 구경할 거리가 많단다.


중학교 여학생이 혼자 공연을 보러 가선 끝난 후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니 잔소리가 터져 나오려고 했다. ‘공부는 언제 하냐?!’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난 후 잔뜩 상기된 채 돌아온 아이의 얼굴을 보면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저렇게 귀찮은 짓을 진심으로 하는 것에 감동했다고나 할까. 저렇게 즐거울 수도 있나? 나는 저렇게 즐거웠을 때가 언제였던가?

말렸다간 자식과의 사이에 38선이 그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고등학생 때가 아니라 중학생 때 빠져서 다행이라고 안도해야 되는 실정이었다.


첫째는 즐거운 에너지가 생겨 그런지 학교 공부도 소홀히 하진 않았다. 소홀히 했다간 부모가 못하게 말릴 것임을 저도 눈치가 있으니 아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노는 듯 보이나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잊진 않는다. 알지만 몸이 말을 안 듣고, 다른 일이 더 재밌는 게 문제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저도 찔렸는지 스스로 공연장까지 가는 일은 자제하고 동영상을 보는 것에 만족했다.


첫째가 아이돌 공연장에 가보면 구매력 있는 직장인들도 꽤 많이 온다고 하더라. 설마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덕질할 건 아니지?라고 묻는 내 머릿속에 요즘 트로트 가수에 열광하는 할머니팬들의 모습이 스쳐가 식은땀이 흘렀다.


말리지 않는 정도가 최선인 나이기에 덕질할 만큼 좋아하는 대상이 있는 것도 부러운 일이지, 네가 즐거우면 됐다!라고 쿨하게 말하진 못하겠다. 다만 아이가 이 시기를 돌아봤을 때 공부 스트레스 말고 원 없이 무언가를 좋아했던 추억이 하나쯤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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