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에 눈이 소복소복 내렸지요.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구하기 힘든 책을 찾아 노원구에 있는 한 도서관까지 찾아갔어요.
역에서 내려 십 분은 걸어가야 하는데 갑자기 일본의 홋카이도 모양 눈이 펄펄 내리는 겁니다.
이럴 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양 예쁜 벙어리장갑 같은 걸 끼고 "오겡끼데스까아~~" 하고 소리치고 싶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좁은 길은 질척거리고, 행여나 아끼는 어그부츠에 눈이 닿을까 질색입니다.
너무 감성 없으시네, 흉보지 마시길, 영화랑 현실을 구분합시다.
눈길을 헤치고 목표로 한 책을 빌리고 나니 배까지 고파 아무 카페나 들어가야 했습니다.
주변 카페에 비해 손님이 없는 곳은 이럴 때 들어가야죠. 나는 조용해서 좋고, 주인은 팔아서 좋고.
앗, 역시나 베이글과 카페라테를 받으니 손님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만 조용한데 음식까지 맛있길 바라진 말아야죠. 안생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빌려온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책을 펼쳐 한 장씩 넘기는데 창밖으로 눈이 소복소복,
조용한 분위기에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즐겁게 그림감상하는 도중, 노부부가 들어오셨어요.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 어르신들이 호감이었는데, 두 분이 나누는 대화가 갑자기 귀에 들어왔습니다.
"나 바빠. 그만 가자. 바쁘다고."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채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나도 바빠!... 눈도 깜빡거려야 되고, 코도 씰룩대야 하고, 말도 해야 되고..."
어쩌고 하시는데 너무 귀여우셔서 입에 미소가 걸렸습니다.
길에 침이나 뱉는 할아버지는 꽤 봤지만 위트 있는 할아버지라뇨.
부부가 나이 들수록 현실적이고 팍팍한 대화만 나누는 경향이 있지요. 할아버지처럼 위트를 날릴 줄 안다면 고단한 세상살이가 살만해질 것 같습니다.
나도 '에잇, 눈 귀찮아!'하고 생각하지만 말고 가끔은 미친 사람처럼 하늘을 보며 빙글빙글 돌아볼까요.
진정한 노후대비는 돈만이 아니라 위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 관계에 좋은 윤활유를 뿌려줄 테니까요.
우연히 만난 조용한 카페에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창밖의 눈 내리는 소리, 노부부 손님의 대화 덕에 열린 마음을 갖게 된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