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부모와 자식은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요?
어떤 인연이었길래 자식이 중년이든 노년이 되든 잔소리를 하게 될까요.
살갑기는커녕 뻣뻣한 K-장녀인 저는 알아서 발버둥 치는 스타일이라 잔소리 듣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저와 기가 막히게 잔소리할걸 찾아내는 아버지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제가 20대 때 이런 직업을 가져라, 고 아버지가 강요하셨지만 거부했죠. 만일 강요하지 않으셨다면 한번 해볼까 생각이라도 해봤겠지만 아예 직업 후보군에 넣지도 않았어요.
최근에는 몸이 안 좋아 입원하신 아버지 때문에 걱정인데, 되려 노후준비는 잘하고 있냐고 따지듯 걱정하십니다.
제가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 나이 먹을수록 항목이 달라질 뿐 때 항상 걱정이셨죠. 잘했다, 할 수 있다는 응원은 바라지도 않아요.
지금까지 잘만 살아왔으니 툭 털고 - 솔직히 말해 잔소리 그만하시고 - 재밌는 수다나 나눴으면 좋겠는데, 생각해 보니 재밌는 수다나 나누는 삶을 살아오지 않으셨네요.
어렵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면 항상 돈이 안된다, 반대하시죠.
제 인생이니 그 걱정을 저만큼 한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네요.
애들보다 먼저 살아봤고. 항상 문제가 발생하니 피해 갔으면 싶고, 내가 했던 실수는 안 했으면 하는, 그런 걱정 가득한 마음에 꼰대가 되나 봅니다.
부모가 돼 봐야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예전에는 아버지의 걱정을 들으면 불끈불끈했는데, 이제는 그렇죠 뭐, 그래도 해봐야죠 뭐, 하고 말끝을 대충 흐립니다.
확실하지 않은 제 태도 때문인지 다음에 전화하면 또 같은 걱정을 하세요. 같은 얘기를 반복하시는 게 '부모님 특'입니다.
특별히 듣기 싫은 날이면 심호흡 한번 하죠. 그런 후 '어쩌겠어요. 나도 고민이네요...'를 반복합니다. 반복엔 반복으로.
걱정이 있어야 둘이 나눌 대화거리가 있고, 부모님도 할 말이 있잖아요. 걱정에 씨가 마르면 안 될 일입니다.
걱정은 애정의 다른 이름일수도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듣기 싫기만 했던 부모님의 잔소리를 대충 흘려들으면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게 됐습니다. 저도 반백살이니까요. 제법 컸잖아요.
신기하게도 똑 저 같은 딸을 낳았습니다.
저처럼 부모님의 잔소리는 듣는 척하면서 귓등으로 흘려버리네요. 이런 게 업보인가요.
오늘도 아버지께 전화드리니 소제목은 다르지만 같은 항목의 걱정을 하십니다.
아버지가 잔소리할 힘이 계속 남아있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