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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Aug 29. 2023

살림

해도 표가 안 나지만, 안 하면 대번에 표 나는 것

한 때 어느 정치인을 대표했던 말,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살림을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하루에도 수십 번은 정리해야 하는 많은 집안일들이 떠오른다.


누군가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빠짐없이 흔적이 남는 길을 정리해 내는 일.


여기저기 걸쳐 저 있는 사용한 수건들.

뱀허물보다 완벽한 신체만 쏙 빠져나간 크고 작은 다양한 옷들.

물마신컵, 음료마신컵, 우유마신컵 종류대로 사용한 컵들이 책상, 티브이 앞, 식탁. 아일랜드바에 흩어져 있다.

자리를 잃은 자동차키와 버스카드, 안경통 등 작지만 매일 필수인 소용품들이 정해진 제자리를 벗어나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손 닿기 쉬운 곳에 툭툭 올려져 있다.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펼쳐질 풍경,

"차키 어디 있어?"

"내 버스카드 본 사람~~?"


매일 반복되는 상황.

술술 넘어가다가도 한 번씩 이런 상황에 대로하고, 대한 며칠 반짝 긴장하며 자신의 흔적정리에 노력을 보이지만 이내 처음으로 돌아가버리는,

살림은 관성의 법칙이 강한 영역이다.


우리 집 살림의 기본값은 처음에 어떻게 설정되었을까.

기본값이 잘 설정되었더라면 살림으로 인한 과중한 소모는 좀 줄어들었을까.


살림...


-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

- 집 안에서 주로 쓰는 세간


뜻을 종합해 보면 가족 구성원 모두의 힘이 필요한 것이 살림이다.

경제적 의미의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의 살림을  남편이 주로 담당하니,

'집 안에서 주로 쓰는 세간'의 의미의 살림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내가 담당하는 게 균형상 맞는 것도 같다.


두 의미의 살림이 어우러져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살림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삶의 틀이 바뀌면서 집 안에서 로 쓰는 세간에 드는 손의 공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의 향상을 위해 손이 이동했고, 세간 살림에 들어가는 손의 공백으로 불편함이 생겨났다.


살림이란 것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해도 표가 안 나지만, 안 하면 대번에 표가 난다는 것'이다.


하던 살림이라 대번에 표가 나는 살림을, 다른 가족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결국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내가 하고야 마는데,,,

자꾸 불만이 생긴다.




오전에 일을 끝내고 들어온다.

무심히 물을 마시고 책을 펴고 읽고 차도 내려 마시고,

그러다가 아침에 설거지통에 담겨 있던 아이들의 아침밥먹은 그릇들이 정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와~, 남편이 설거지를 했구나.'


"여보, 당신 설거지 했네?"

"응, 어제 회사에 일이 적어 쉬엄쉬엄 일했거든. 당연히 해 놔야지."


순간 감동이 밀려든다.


살림은 해도 표가 안 나고,

안 하면 대번에 표가 나는.

그와 내가 리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글쎄요~ 그건 모르겠고, 최대한 따신 내 나게 만들어 가 볼라고요~"


그와 함께  '오장 같이 살림을 꾸려'가려고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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