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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Sep 05. 2023

'부모'라는 무게감

그게 되면 아이가 아니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 등교한 오전시간을 이용해 '부모교육'이란 타이틀의 강의를 제법 들으러 다녔다.


부모교육의 취지는 무엇일까?

좋은 부모 되기?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지?

성공하는 자녀로 키우기?

성공이란 무엇인가?

좋은 대학교에 보내고 좋은 직장을 가지게 하는 것? 



이런 범주의 것들이라면 나는 교육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혹은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기?

어려움을 만났을 때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좋은 아이로 키우 것?


이런 범주의 것들이라도  교육의 효과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말로 포장해 봐도 부모교육의 최종전달내용은 성공시키는 것, 그것은 명예와 재물을 가지게 하는 걸로 귀결된다.


정석을 말하면 훈수로 들리기 쉽고,

'잘하고 있어, 나는 너를 믿어'라고 말하기엔

내 마음이 무지 불안하다. 아이의 잠재력을 믿기 아이의 정상적 발달을 막는 장애물들이 너무 많다. (마력의 스마트한 기기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 들어도 들리지 않음을 근거로 초등 학원은 내지 않는다.

초등시절의 사교육은 대부분 부모의 주도권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학원 권유에 대한 아이의 의사를 따르기 때문이다.


아이의 의사가 이유라고 말하지만 '경제'라는 두 번째 이유도 적지 않다. 만약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가성비를 계산하기 전에 안 다니니 보다 가면 하나라도 듣고 오는 것을 감안하여 보냈을 수도 있다. 듣고 오는 것이 극도로 미비하거나 아예 자신의 지식으로 내면화시키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그러나 나의 경제력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결과값을 얻어야 하는 구조다. 놀멍쉬멍 다닐 학원이라면 안 다니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두 아이들 시절이었을 때를 포함하여 학창 시절 내내 열심히 공부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의 아이가 이해가 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이유다.

그때 목적을 가지고 공부를 했었다면 지금의 나보다 조금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나은 삶이란 지금보다 좀 더 탄탄한 경제력을 제공해 줄 수 있은 직업군을 가진다는 의미다.

늘 경제의 빈약함을 소소하게 경험하는 삶이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간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한 현상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그럭저럭 조절해오며 잘 살고 있다.

그러나, 두 아이가 사교육 필요의 시기에 진입하고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견딜만했던 상태는 견디기 힘든 상태가 되어가고,

매사에 손이 곱아지는 상황은 힘이 들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수준이 훌쩍 높아진 국영수사과의 교과서와 아이의 매일 생활을 비교해 보면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건강하게 땀 흘리고 뛰어다니는 것까지는 너무 사랑스러운데, 교과서만큼은 예복습 좀 하자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다. 역시 마음과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는 최소의 공부가

아이의 입장에서는 매일 감당하기에 큰 일이다.


오늘도 미숙한 엄마는 스스로 할 일 해놓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한 번 습관화시켜놓으면 별 개입 없이 자기 할 일 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엄마의 실현 불가능한 바람을 가능케 할 무언가를 찾는다.


그게 되면 아이가 아이가 아니지!



"그게 되면 아이가 아니지!"

남편의 한결같은 말이다.


근데... 그게 되는 아이가 이..ㅆ..


아이구...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내 아이는 내 아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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