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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Sep 18. 2023

기다림

삶=기다림, 이 등호가 적절한지는 몰라도...

어려운 것은 하고 많지만, 지금 당장 겪고 있고, 매일 겪는 것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의 끝을 알고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대부분의 기다림은 끝을 알 수 없는 종류의 기다림이다.

끝이 어디로 향할지 알지 못하면서 기다리는 일은 양면의 감정을 동반한다.

설레임과 두려움이다.


자녀가 어떻게 자랄 것인가를 기다리고,

부부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기다리고,

노년의 모습을 기다리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갈 인연을 기다리고,

삶을 어렵게 하는 것들이 사라져 주길 기다리고,

이루고자 하는 것이 이루어지길 기다리고,

오늘을 기다리고,

내일을 기다리고,

10년 후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기다림은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이다.

닿기 원하는 곳에 닿기 위해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배의 키를 조종하듯 그럼직해야 할 듯한 행위 기다림을 조종한다.


수동적인 기다림에 가해진 능동의 행위는 기다림의 종착지로 가는 동안 두려움을 설레임으로 변환시키고,

종국에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기다림의 끝에 다다랐을 때 '후회'라는 감정의 무게를 덜어내 준다.


꿈을 꾼다는 것은 가상 속 기다림의 끝을 정해두고,

전략과 전술을 동원하여 기다림의 시간을 채우는 일이다.

세상 교류가 덜하던 시절에는 기다림이 순응에 가까웠다면,

세상의 교류가 활발하다 못해 따라잡지도 못할 만큼 허덕여야 하는 현재의 속도 속 기다림은 자못 전투적이다.


밤 11시 27분,

12살 아이를 재우고,

독서실에 공부하러 간 16살 아이를 기다린다.

귀가전 아이를 기다리는 일이 애쓰여, 펄펄한 12살 아이를 애쓰며 재웠다.


기다림 속 걱정스러움을 맞서야 했다.

덧옷을 입고 책 한 권을 챙겨 들고, 아이가 공부하고 있는 주민 독서실로 향한다.

주일 늦은 시간이라 한적할 거란 걱정이 기우였음을 눈으로 확인한다.

환히 불 켜진 헬스장과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창너머 아이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들어가면 방해가 될 것 같아, 길가 벤치에 잠시 앉아 있다 이내 되돌아온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린다.

잠시 후 돌아온 아이를 안아준다.

네가 있는 곳에 갔다가 들어가면 방해될 거 같아 돌아왔다고 하니, 늦은 시간이면 빈 공간에 혼자 있을 아이가 걱정돼 종종 오는 엄마를 기다렸다고 한다.


너도 기다렸고, 나도 기다렸다.

우리의 기다림은 사랑이었다.


45년의 기다림을 지내오고 보니,

16살의 힘차고 충만한 기다림이 아름답다.


그러나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의 기다림은 애잔하다.

기다림을 대신해주고 싶어 질 만큼.


애잔함을 품은 기다림을 견디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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