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low snail Sep 22. 2023

아련한 과거와 고단한 현재 그리고

그림책을 읽다가...

불안한 미래!


누군가가 '이 책은 꼭 읽어야 해'라는 추천목록이 아닌 이상,

도서관에 머물며 제목 따라 분류 따라 혹은 급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집어넣는 책들을 보면 나도 모르는 나의 취향과 최근의 관심영역이 나온다.


그것은 문학책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으나, 지식책과 그림책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충분해, 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품고 있을 법한 제목의 심리 서적들을 보면 위로받고 쉽고 인정받고 싶은 현재의 시간이 보인다.


'미래의 트렌드 읽는 법, AI 시대 살아남는 법. 반드시 ~~~ 해야 한다.'등의  급박한 제목의 책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대변해 준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그림책 시장은  속도를 따라가며 읽기도 벅찰 정도로 다양한 책들이 속속 나온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 가운데 내가 골라내는 책들은 향수를 자극하는 레트로 감성을 지닌 책 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그림책들이다.


생계에 바빠 어린으로서의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구르며 자란 어린 시절이 무어 그리 좋았다고, 그림책을 보며 그때 그 시절 그 냄새를 그리워하는 나를 발견하곤 종종 의아해지곤 한다.


조석으로 바람에 찬기운이 더해간다.

풀벌레 소리가 깊어진다.

하루종일 흙 한번 밟아볼 일 없는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눈을 감으면서도

아이랑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슬몃슬몃 코끝에 시골 냄새가 감돈다.


고리에 꽂아둔 숟가락이 자물쇠를 대신하는 방앗간의 문을 두드린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다 못해 10대의 자녀를 둔 나의 세월은 아랑곳없이 훌쩍 나이 들어버린 방앗간 사장님을 보고 내심 놀란다.

그래... 그 집 딸이 나의 언니랑 친구고,

나의 언니는 두 아이가 벌써 성년이 되었는데...

방앗간 사장님의 시간은 왜 멈췄을 거라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빻으러 간 불린 쌀을 내어주고,

돌아가는 모터소리에 목청을 높여 '도산동 김씨네 막내딸이다' 를 시작으로 사는 이야기를 묻고 답한다.


물으나 마나 별 소용없는 근황들이 모터소리에 묻힌다.


낡은 기계 위에 묻은 쌀가루를 빗솔로 싹싹 쓸어내려 하얀 비닐봉지에  담고 질끈 묶는다. 8000원을 내고 인사를 한다.


손님인 내가 나오자마자 방앗간 사장님도 다시 고리에 숟가락을 거꾸로 꽂아 문을 잠그고 옆에 있는 집으로 향하신다.


고추며, 참기름, 미숫가루등이 빻이고 짜이는 동안, 하얀 플라스틱 오봉에 수북이 담긴 종합 캔디 하나씩을 먹으며 방앗간 기계소리를 넘겨 큰 목소리로 대화하던 어른들의 모습,  방앗간의 열기가 후끈 끼쳐온다.  


낡은 미닫이 샤시문고리에 우그러져 거꾸로 꽂힌 손 때 묻은 숟가락과 함께 옛 정경들을 가둬놓는다.


내 기억의 풍경들을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어 종종 유년의 장소들로  데려가는 아이들과  옛이야기를 하며 가을 들녘을 가로지른다.


추석이 다가온다.

추석, 방앗간, 엄마의 어린 시절 그리고 아이의 어린 시절에 더해질 기억으로 마음이 따듯해진다.


이때만큼은 아련한 과거과 현재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다.


그것이 비록 과거를 유독 아름답게 추억하는 사람의 심리인 므두셀라 증후군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림책 속 아련한 추억의 그림 한 장이 오늘을 따듯하게 덥혀주는 신비를 경험한다.




*표지그림 : 할머니네 방앗간/리틀김/고래뱃속








매거진의 이전글 전쟁과 평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