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 snail
Oct 07. 2023
나는 등집 지고 다니는 달팽이
이 세상 많고 많은 풀숲에
내 몸 하나 누일 곳 없을까
걱정 많은 나는 집을 지고 다닌다.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낮에
햇빛에 데일까
피할 집을 등에 지고 다닌다.
비 내리면 칼같이 내리 꽂히는 빗발에
물컹한 내 몸 한 조각 베일까
딱딱한 집을 등에 지고 다닌다
번들거리는 피부에
찬 바람 한 점이라도 닿을까
온몸을 좁디좁은 방구석으로 밀어 넣어 옹송거린다
이 넓은 세상에 내 작은 등 누일
따스한 이부자리 없을까
걱정도 많다
온종일 지고 다녀야 하는 달팽이껍데기의 무게
반평생을 지고 다녀야 하는 은행 이자
달팽이와 나
축복인 듯 짐인 듯
등짐을 지고
꾸무럭 꾸무럭 오늘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