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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Nov 09. 2023

선택지 앞에서

주황

흙당근을 살까 세척 당근을 살까.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으로 살까 손 벌벌 떨리는 국산을 살까.

세척당근은 편리하고 좋지만 아무래도 대량의 당근을 저렇게 깨끗하게 씻어야 하는 노동 앞에 편리와 능률을 위해 어떤 루트를 거쳤는지 알 수 없어어 패스.

중국산 당근은, 국산당근보다 유통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여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해 들었을 모종의 방법이 믿음이 가지 않아 패스.

물가상승으로 손곱아지는 지갑사정에도 불구하고 국산 흙당근으로 결정.





노랑

비닐로 진공포장된 것을 살까 긴 직사각형의 플라스틱 포장이 된 것을 살까?

상대적으로 짙은 노랑을 살까 연한 노랑을 살까

4 무(無) 제품을 살까 치자색소를 쓴 것으로 살까 행사용 상품으로 살까


빨강

사용하기 좋게 잘라진 것을 살까 내가 잘라 쓸까

인공색소부터 시작해 첨가물까지 누가 봐도 인공적인 요소가 강한 햄 코너에서 덜 붉고 더 도톰하고 그 많은 첨가물 중에 4가지는 안 들어갔다는 4 무(無) 제품으로 한다.


초록

가시오이로 할까 다대기오이로 할까

오이로 할까 시금치로 할까



흰색

맛살엔 게가 들었을 거란 진실을 안 후에도 착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맛살게의 원조 oo맛살을 할까 양심적으로 게살함량을 강조하며 후발주자로 출발한 타 상품의 맛살을 살까


검정

두 번 구운 김으로 할까 생김으로 할까

10장짜리 20장짜리 또는 대형으로 살까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라더니만 정말 순간순간 선택의 마디마디다.



모든 재료들을 한 데 모아 돌돌 만다.

딸아이의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도시락이 된다.

무엇 하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던 과정이었지만,

딸아이에 대한 사랑은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이건 자동적이고 태고적이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 테지.


없는 살림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더 잘해주는 것인지,

그 선택지만 있을 뿐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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