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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Nov 10. 2023

환경을 생각하는건 삶의 태도


나의 엄마는 친환경운동가이다. 아니 친환경실천가다.

여든을 조금 넘긴  엄마의 삶은 소박하고 정갈하다.


엄마의 삶은 늘 아껴 쓰고 다시 쓰고였다.

엄마집 마당 수돗가 물통에 담긴 플라스틱 바가지가 기워져 있다. 플라스틱 바가지가 기워져 있다고? 그렇다. 강한 햇볕, 추위와 더위에 상대적으로 노출이 많은 바가지 주변이 작은 충격에도 갈라질 기미가 보인 모양이다. 못이나 뾰족한 도구를 불에 달궈 플라스틱에 실을 기울 자리에 구멍을 뚫고 얇은 노끈으로 금이 간 바가지를 야무지게 감쳐 놓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대한민국의 다 O소에 가면 1~2천 원이면 차고 넘쳐나는 게 석유화학재로 만든 플라스틱 생활도구들이다. 꼼지락거리며 시간을 들여 사용 기한을 연장한 바가지를 보자 괜한 행동을 했다는 생각과 함께 꼼지락거리며 바가지를 꿰매는  엄마의 행동이야말로 요즘 책상 너머 교육으로 강요받는 친환경운동이다 싶었다.


엄마에게는 재봉틀이 있다.

1940년대생 여자들에게 필수품에 가까웠다는 재봉틀.

발로 밟던 재봉틀은 벌써 십몇 년 전에 리모델링을 거쳐 앉아서 사용할 수 있는 콤팩트형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바짓단 줄이기, 소매 줄이기 등 웬만한 수선은 물론이고 때로는 오래되어 낡거나 유행이 바뀌어 손이 가지 않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또는  블라우스는 스카프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힘들게 뭐 하러 품 들이느냐고 말하지만 제법 이쁘고 마지막까지 용도를 생각해 낸 엄마의 생활태도가 이쁘다.


엄마의 반짇고리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엄마의 반짇고리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어쩌다 하나 있는 단벌신사 마론 인형에게 못 신는 양말로 꼬물거리며 옷을 해 입혔던 기억이 난다.

못 입게 된 한복 천이었는지, 까스름한 천으로 만든 밥상보부터, 시골에서 농사지은 메밀을 넣은 만든 베개의 베갯까지. 거의 모든 것들이 엄마의 손에 의해 재탄생되었다.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알록달록 단추를 넣어둔 제법 큰 투명한 플라스틱 통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더 이상 못 입게 된 옷들을 버릴 때도 단추나 지퍼를 분리해 사용을 구사해 냈다. 단추는 떼어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넣어두곤 했는데, 여러 종류의 색색깔의 단추들이 든 투명 플라스틱 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통 안에 든 단추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반짇고리는 양철통이었다. 그것의 용도도 처음부터 반짇고리는 아니었다. 비타민제 같은 약재가 포장되어 있던 대형 양철통의 변신이었다.

얼마 전 바느질 할 일이 있어 반짇고리를 열었더니 정리되지 않은 단추들이 어지러이 굴러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이 마시고 난 투명한 예쁜 플라스틱 통 하나를 남겨 깨끗하게 세척하고 말린 후 중구난방 뒹구는 단추들을 한데 모았다. 새 옷에 달려온 여벌 단추들이 한 곳에 모여졌다. 단추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지구를 위해 어찌어찌해야 한다는 그 어떤 환경전문가의 말보다 엄마의 삶은 생활 자체가  친환경적이다.

리사일클링과 업사이클링의 대가이시다.


교육을 통해 실천을 강요받는 환경교육들이 실생활과 맞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배어들지 않는 부분들이,

엄마에게는 삶 자체였다.


그것은 목적성과 인위성이 가미된 환경운동이 아니다.

무엇이든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엄마의 삶의 태도일 뿐이다.

그래서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보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단추통을 흉내 내듯이,

환경교육 못지않게  삶을 사랑하고 아끼며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스며드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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