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돌이 나름 선생님 Oct 26. 2022

그 기타리스트

여섯 줄의 기타가 있기 전에 다섯 줄의 기타가 있었다. 이제 와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사란 그렇게 상식적이다. 다섯 줄의 기타를 만든 사람의 이름은 ‘포스터’로 그의 집안은 노래로 먹고 사는 집이었다. 원래 조상은 유럽 전역을 떠돌던 집시였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백작의 딸과 결혼하게 되면서 정착을 했다고 한다. 

백작의 딸과 결혼한 포스터의 조상은 일주일 후에 독살됐고 독살 당한 아들의 아버지는 백작의 딸을 숲에 숨어 있다가 날카롭게 갈은 나뭇가지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 분노한 백작은 군대까지 동원해 인근의 집시를 모두 몰살하려 했고, 그때 백작과 적대 관계에 있던 인근의 공작이 집시들을 모두 불러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도 끝나고 세월도 충분히 흘렀을 때 더 이상 집시들은 집시가 아니게 됐다. 농부가 되거나 계속 군인으로 남은 사람도 있지만, 많은 수의 집시들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포스터의 가족 역시 고조 할아버지 때부터 그 지역에서 노래와 춤을 전문적으로 담당했다.

 포스터는 어릴 적부터 학대를 당했는데 이유는 그가 노래를 아주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주워온 자식처럼 포스터는 노래를 못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은 포스터의 어머니를 의심했다. 그곳에서 노래를 못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전쟁터에 나가야 할 병사가 칼을 쥘 힘조차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포스터에게는 영양가 있는 음식이 주어지지 않았고 제대로 된 방에서 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마을과 가족과 집이 있음에도 노숙을 해야 했고, 친구도 없이 몸은 점점 야위어져 가야 했다.


사하라 교수는 프톨레마이오스 대통령이 새로 지은 바빌로니아 도서관의 고문이었다. 바빌로니아 도서관은 중동 지역에서 발견된 고문서들을 보관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사하라 교수는 거의 찢겨진 것이나 다름 없는 문서 더미에서 포스터의 악보를 발견했다. 처음 포스터를 발견했을 때 사하라 교수는 포스터가 고대의 시인인 줄 알았다. “나는 이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 세계를 위한 반주를 하고 있다”와 같은 범상치 않은 표현이 그 악보 아래에 ‘포스터’란 이름과 함께 쓰여 있었던 것이다.

 사하라 교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고문서를 보는 재미에 빠져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바빌로니아 도서관에 가곤 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고문서를 우주에서 혼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매우 고혹적인 즐거움이었다.

 어느 날 사하라 교수는 이상한 악보 하나를 발견하게 됐다. 오선지인 것은 분명한데 뱀이 기어가듯, 아니 뱀이 기어가는 땅바닥을 묘사라도 한 듯 굴곡 졌다가 평탄해지고 다시 굴곡지는 낙서 같은 오선지였다. 오선지의 선 하나하나들은 모두 그렇게 직선의 꼴에서 벗어나 있었다. 보통 악보라면 오선지 위에 음표와 쉼표을 그리는 것인데, 음표와 쉼표 같은 것들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사하라 교수는 그것이 악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것이 악보임을 깨우쳐준 것은 사하라 교수의 딸과 그 남자친구였다. 사하라 교수는 이상한 신비감에 빠져 불법인 줄 알면서도 그 악보를 복사해 집 안에 두고 있었다. 사하라 교수는 그 악보를 볼 때면 우주의 심연으로 난 창을 보는 듯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사하라 교수의 딸의 이름은 매클라카로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의 앞길이 쉽게 풀리지 않아, 오히려 남자친구보다 더 괴로워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미국 사람으로 이름은 부캐넌이었는데 기타리스트였다. 연주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사실 그가 하고 싶은 것은 기타를 위한 작곡이었다. 하지만 그는 작곡 재능이 없었다. 그 괴리감 때문에 그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하고 있었고 포스터의 그 악보를 보게 될 때쯤에는 절망의 바닥에서 거의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부캐넌은 넓은 거실의 탁자 위에 놓은 그 고문서를 보자마자 바로 그것이 기타 독주를 위한 악보임을 알아봤다. 그는 24시간 기타만 생각하는 사내였다. 다섯 마리의 뱀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갈 밭을 기어가는 것 같은 그 고문서를 보는 순간, 부캐넌의 머릿속에 너무나 아름답고 쓸쓸한 음들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포스터는 자신이 정말 쓸모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절대적으로 쓸모 없는 존재가 맞다고 생각했다. 그는 깊은 숲 속 빈 오두막에서 몇 년째 홀로 지내고 있었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갓 스물이 된 포스터였지만, 얼굴은 심하게 주름져 있었고 머리의 반은 새하얗게 새어 있었다. 그의 유일한 친구가 있다면 오두막 앞의 나무들 사이에 거대하게 쳐진 거미줄이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포스터는 그 거미줄 아래 하루 종일 앉아있었다. 비록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면 음 하나 맞추지 못하는 포스터였지만, 그는 바람의 세기와 거미줄의 미세한 두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화음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몇 년간 포스터는 그 화음들을 듣기만 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몸이 너무 쇠약해져 살아갈 날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그 화음들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음표 그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연주할 줄 아는 악기도 없었다. 

 포스터는 결심이 선 날부터 가끔씩 마을로 숨어들어가 종이를 훔쳐왔다. 그리고 그 위에 춤추는 오선지를 그렸다. 어떤 악기로 연주해야 하는지 포스터도 몰랐다. 포스터는 인간의 손이 만지는 악기가 바람의 노래를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도 않았다. 그는 매일 매일 자연의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거미줄의 모양을 종이 위에 그려놓았다. 포스터가 아무도 모르게 죽었을 때 그의 오두막에 남겨준 종이는 5천 장을 넘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50개의 그림을 그린 날도 있을 정도였다. 


로이 부캐넌은 당장에 기타를 꺼내 줄 하나를 잘라냈다. 이제 그의 기타는 다섯 줄의 기타가 되었다. 부캐넌은 포스터의 악보를 보며 연주를 시작했고, 그 노래가 바로 그 유명한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이다. 부캐넌은 사하라 교수에게 다른 문서들은 없었느냐고 물었고, 사하라 교수도 가능한 모든 곳을 뒤져보았지만 다섯 줄의 기타를 위한 악보는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었다. 

이전 07화 촛불의 美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