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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 나름 선생님 Oct 26. 2022

합정 발라드

이것은 사랑을 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너무 거창하다면 적어도 지난 34년간은 사랑을 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7년 전 나는 합정에서 사람을 죽였었다. 아내의 친한 친구가 합정에서 이사 오는 바람에 따라온 길이었다. 아내의 친구 집은 내가 그 사람을 죽인 곳 근처에 있었다. 나는 가슴이 뛴다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을 죽였던 그 시절과 그때가 그리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바깥으로 끌려 나와서는 찬찬히 동네를 걸었다. 나는 그 사람을 죽인 다음에 시체를 조각조각 냈는데 손을 파묻은 곳도 보였고 종아리를 숨겨놓은 곳도 보였다. 두 귀는 따로 묻지 않고 한 곳에 파묻었던 것이 떠올랐다. 왠지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빨리 해 가보았다. 지금으로 치면 합정역 7번 출구 뒤편 골목이었다. 막상 가보니 예전엔 공터였던 그곳에 아담한 1층짜리 카페가 올라가 있었다. 조금 허탈해졌다.

 나는 일상에 지친 머리를 억지로 굴리며 기억을 애써 더듬었다. 코는 어디 묻었더라, 머리카락은 잘라서 어떻게 했었지? 머리카락은 풍장 시켰었던가……확실하지 않았다. 벌써 7년이나 지난 일이고 그 동안 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살해된 그 사람의 머리 행방이었다. 나는 한 입에 머리를 통째로 삼켰었다. 내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 볼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글쎄,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조그만 입이 사람의 큰 머리를 한 입씩 뜯어먹으면 모를까, 한 입에 삼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현실적으로 보면 그릇에 뜬 쌀밥을 숟가락으로 퍼먹듯 한 입씩 먹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집들이는 흥이 오르고 있었다. 모두 네 쌍이 만났는데, 아내는 내 승진을 자랑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축하주가 쏟아졌다. 나는 술은 좋아하지 않지만 기이하게도 꽤 마시는 편이었기에 모두 받아 마셨다. 아내는 나를 사랑하는지 테이블 아래에서 내 손을 꼭 쥐었다. 예전부터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면 나를 사랑한다는 아내였다. 나는 아내를 두 번째 만났을 때 청혼을 했었다. 그녀는 바로 승낙하지 않았지만 얼굴은 빨개졌다. 그때 난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그때 사람을 죽였을 때만 힘들었지, 나머지 일들은 사실 어렵지 않았다고. 어쩌면 다른 일들은 내 심장을 뛰게 하지 못하는 별 의미 없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지하철을 타고 가자고 했기 때문에 잠시 뒤면 우리는 일어나야 할 터였다. 그때쯤 난 다시 바깥으로 이끌렸다. 나는 집 뒤에 숨어 내가 찢어 죽인 그 사람의 흩어진 몸체를 머릿속에 다시 조립해보았다. 머리는 내가 먹었기 때문인지 얼굴은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 나를 죽이고 배를 가르면 그 사람의 얼굴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나친 상상력이 발휘된 변태 같은 생각이었다.

 잠시 뒤 아내와 사람들이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휴대폰도 지갑도 갖고 나오지 않았고 내 구두 대신 친구 댁의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나는 아내가 어서 나를 포기하고 떠나주기를 바랐다. 그녀의 집으로. 예전부터 우리의 집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아내가 내게 상냥할수록 나는 아내가 로봇 같았다. 아내는 며칠 전 내게 이기적이라고 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나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어휘력이 짧은 아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유아론적인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다행히 아내는 합정을 떠났다. 그새 합정의 하늘은 밤인데도 흐려졌고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비가 왔다. 그 사람을 만날 때면 늘 비가 왔다. 정말 그랬다. 사랑했었는데 헤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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