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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 나름 선생님 Oct 26. 2022

스톤헨지에서 가장 예쁜 여자

매리는 솔즈베리의 스톤헨지 아랫마을에서 지금쯤 뜬 눈으로 누워있을 것이다. 나를 역시 불가해하고 사람으로 규정하며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톤헨지로 갈 수 없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스톤헨지를 죽은 자의 집이라고 했다. 산 자에게 집이 필요하듯이 죽은 자에게도 집이 필요한 것은, 삶과 죽음이 연결된 하나의 흐름에 있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죽은 자에게는 집이 없기를 바란다. 죽으면 그 사람이 영원히 지워지기를 바란다.


매리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이곳 더블린에서 3박을 할 예정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호텔에 있었다. 가만히 있다 잠들도 싶었지만 밤이 되자 더블린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깜깜한 바에 창가엔 창백한 귀신의 얼굴처럼 김이 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죽음에 대한 내 바람과 모순되게 죽은 사람을 생각한다. 나와 결혼한 매리의 언니인 베아트리체를. 매리는 신혼여행지로 영국을 가고 싶어했고, 스톤헨지는 내가 그렇게 반대했음에도 꼭 가고 싶어했다.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운명의 힘에 전율하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서 난 신혼여행 중임에도 이제 부인이 된 매리를 혼자 스톤헨지로 보냈다. 


캐리어에서 꺼낸 나무상자에는 지난 몇 개월간 그린 그림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지난 몇 개월 동안만 낯선 여인들의 초상화를 그린 것은 아니다. 여행작가인 나는 일 년의 거의 전부를 해외에서 보낸다. 여행을 하며 일을 하며 나는 묵었던 마을들에서 본 미인들의 얼굴을 그렸다. 낮에 돌아다니며 즉시 그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스쳐 지나갔던 매혹적인 여인들의 얼굴들이 모두 밤까지 내 머릿속에 살아있지 않았다. 나는 깊은 밤까지 살아남은 미인들의 얼굴을 그려갔다. 나는 더 많은 미인들을 보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이 걸어 다니려고 했다. 출판사에서 나를 좋아하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출판사에서 대중에게 나를 소개할 때 타이틀은 ‘전 세계 숨은 골목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작가’였다. 그리고 내 글들은 언제나 얼마간 회색 빛깔의 우울함이 감돌았는데, 그것도 내 책이 많이 팔리는 요소 중의 하나로도 작용했는데 나로선 이해 못할 일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캐리어 속에 있는 지난 몇 달 동안 그린 그림들을 꺼내보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어쨌든 약속이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예쁜 여자는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개들의 흥분된 입김 같은, 사람들이 감언이설하는 무질서한 탐욕에 언제나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와 내면을 다른 무엇을 위해 활용하려 한 적도, 그것들 뒤에 자신의 소소한 행복을 감춘 적도 없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였고 또 가장 칭송 받는 여자였다. 그렇다고 베아트리체가 성년처럼 어떤 선행을 베풀었다는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단지 보통 사람임을 늘 자각하고 있었다.


형은 27살에 더블리대학의 고고학교수로 초빙돼 아일랜드로 떠났다. 베아트리체가 실종된 지 8년째 되던 해였고 내가 15살 되던 해였다. 동네에서 베아트리체에 무심했던 사람은 내 보기에 형이 유일했다. 나 역시 베아트리체 때문에 친구들과 크게 다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형은 아무리 베아트리체가 웃으며 다가와도 늘 무심한 얼굴로 대충 인사하고 스쳐 지나갔다. 예전부터 형은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었다. 브람스처럼 늘 과묵했고 눈빛은 늘 먼 곳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뭔가를 물어보면 바로 답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어떤 때는 일주일 전에 물어본 것을 답하곤 했다. 내가 봤을 때 별 것 아닌 질문이었는데 말이다. 

수학과 음악에 특히 재능을 보이던 형이 인류고고학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친척들은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누구도 형 앞에서 자신의 아쉬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형은 다른 사람의 말 따위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것을. 형은 언제나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했다. 형이 먼 나라인 아일랜드로 떠났을 때 나는 어쩐지 부모님들이 참았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비록 아들이지만 형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사실 나만 해도 형이 없어진 집에서 더 밝고 수다스럽게 지낼 수 있었다. 인생은 풍선처럼 가벼워진 것 같았다.


형에게 편지가 온 것은 내 나이 서른이 됐을 무렵이었다. 형은 그때까지 한 번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형의 편지는 단 두 줄이었지만 나를 걷잡을 수 없는 충격 속에 빠뜨렸다. 


베아트리체가 자살했다.

나의 실수임이 자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형의 주소는 솔즈베리 평원 근처에 있는 마을이었다. 나는 바로 떠나지 못했다. 이제 와 베아트리체라가 자살했다니? 베아트리체가 실종됐을 때 온 마을은 술렁였고 몇 명의 부랑자가 불려가 고진 문초를 당하기도 했다. 결국 그들은 무고가 입증돼 풀려나긴 했지만 그들조차 부당한 고문에 항의하지 않았다. 베아트리체의 부모님은 마을을 떠났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은 항상 베아트리체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메리와 결혼한 이유를 대보라고 하면, 솔직히 베아트리체와 닮은 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매리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주 뒤에 영국으로 떠났다. 편지에 적힌 형의 주소는 솔즈베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집이었다. 집은 오래돼 낡아 보였지만 기둥과 지붕 상태를 봤을 때는 지어진 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관리가 제대로 안 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형의 집은 마을 속에 있지 않았다. 일부러 근처의 모든 마을에서 등거리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세운 듯 했다.


문을 열기 전부터 집 안에선 뭔가가 완전 부패한 냄새가 진동했다. 문을 열자 냄새는 한층 역해졌고 사방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내 가슴은 벌써부터 강한 슬픔과 격한 분노에 벌개져 가고 있었다. 몇 개의 방문을 열었지만 허탕을 치고 발견한 것은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였다.


지하엔 역시 낡은 거미줄이 늘어진 그물처럼 걸려있는 침대가 있었고 반대편에 수납선반이 있었다. 수납선반 위에 있는 것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것이 석고로 만든 조각상인 줄 알았다. 벌레와 진물과 뼈와 살이 아직 뒤엉켜 있는 그것은 한때 사람이었던 무엇이었다. 머리와 목과 가슴과 배의 흔적은 있었지만 팔과 다리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조각된 흉상처럼 그것은 사지가 잘린 사람의 흔적이었다.


형은 어디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죽은 베아트리체의 흉상을 들고 스톤헨지 안에 묻었다. 베아트리체와 매리는 어릴 적 형이 해주던 고대 얘기를 좋아했는데, 언젠가 스톤헨지에 꼭 가고 싶어했었다. 사지가 잘린 베아트리체가 어떻게 자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알아내기 전까지 형을 신고할 생각이 없었다. 이 지구 어딘가에 형이 살아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전 세계의 살아있는 미인들을 보며, 그래도 베아트리체가 가장 아름다웠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한편 나는 기이하게도 여러 나라를 떠돌다 보면 베아트리체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가끔 발견했다. 마치 불교의 윤회처럼. 불교에선 윤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주체는 없지만 상속은 있다. 나무는 타 없어지지만 불은 남는다.


창 밖에서 비는 더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깊어질수록 나는 미인들의 그림에 더욱 골몰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마 매리일 것이다. 헌데 나는 매리에게 내 묵고 있는 호텔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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