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들과 쉬다가 옛날 드라마 명대사 중 가장 오그라드는 대사를 서로 주고받고 있었다. 나도 신이 나서 <가을동화>의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를 외쳤고, 순간 정적이 흘렀고, 무슨 드라마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검색해 보여주는데, 몇은 드라마가 나왔을 때 5살이 채 안 되었다고, 어떤 친구는 그때 태어났다고... 평소에 동료의 나이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거리감을 확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주말에 집으로 놀러 온 친구 A에 일화를 얘기해주자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대는데...
“<가을동화> 추억이다. 사랑은 돈으로 사겠다며 패기를 보였던 부자 서브 남. 그런 플러팅은 처음이라 신선했는데. 와 그게 벌써 20년이 넘었구나. 얼마 전에 2000년대 초반 K-드라마의 클리셰를 보는 듯한 독일소설 읽었는데. 생각해보면 K-드라마의 시초는 1900-1910의 독일소설이 아니었을까?
제목이 <엘제 양>이야. 엘제는 결혼하지 않은 어린 여자인데, 이모의 지원을 받아 쉬려고 알프스산맥이 멋들어지게 있는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어. 테니스도 치고~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던 중에 엄마로부터 서신을 받게 돼. 아빠가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구할 곳이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딸이 있는 휴양지에 도르스데이라는 아빠 친구가 있다는 걸 듣고,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을 해보라는 거야.
엘제는 자존심도 상하고, 뭔가 음흉해 보이는 그 사람한테 말을 걸어야 해서 혼란스러워해. 소설 전반이 1인칭 시점이다 보니, 엘제의 심리묘사가 탁월해. 읽는 내내 얼마나 감정이입이 되던지... 주변인이나 풍경 묘사가 객관적이지 않고, 엘제의 심리가 반영돼서 왜곡되기도 하는데, 그런 지점이 오히려 흥미롭더라고. 작가가 의학 공부를 했다네, 특히 심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프로이트가 아르투어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잘 대변한 댔다나 어쨌다나. 나는 프로이트 별로 안 좋아해서...
아무튼! 내적 묘사를 기가 막히게 하는 작가야. 가족의 위기이냐 자존심이냐! 내적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용기 내서 말을 걸었더니, 이 미친X이 나체를 보여주면 빌려주겠대. 엘제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그사이에 엄마로부터 재촉하는 서신이 또 도착하고...”
친구 A가 평소와 달리 소설의 결말까지 말해주었다. 듣는 내내 <가을동화>의 은서가 생각났다. 그놈의 피가 뭐라고. 가족이 뭐라고... 난 마지막 결말을 새롭게 바꿔주고 싶었다. 엘제의 손을 잡고 도망칠 거야. 장남인 오빠도 있으면서 딸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가족을 벗어나자고. 가족 그거 별거 아니라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보자고.
<엘제 양/ 아르투어 슈니츨러(진일상 옮김)/ 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