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올해 1월에 세웠던 목표를 발견하고 어찌나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웠는지 깜짝 놀랐다. 연말이 다가오니, 다 때려치우고 침대에만 누워있고 싶던 순간을 이겨내고 무려 회사에 출근한 나를 기특해하며 친구 A와 함께 한 해를 돌이켜 보는데, 문뜩 우리의 주 4일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분명히 노동해방을 향해 한 걸음 내딛던 얘기를 기억하는데, 노동의 시간을 늘리니 마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 요즘에 분개하며 침을 튀기니 친구 A는 맞장구를 치다 자연스럽게! 어김없이! 늘 그렇듯이! 소설 영업을 시작하는데...
“노동권만 문제가 아니야!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내 월급만 그대로고! 도시 괴담 같던 얘기들이 현실이 되어가는 시국을 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소설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크리스타 볼프의 「몸앓이」라고, 독일이 동서로 나누어져 있을 때 동독의 대표작가였던 크리스타 볼프가 쓴 소설이거든. 중년여성인 주인공이 맹장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수술하고 회복하는 중에 합병증이 와서 생사를 오가는 병원 체류기야. 주인공은 병과 사투를 벌이느라 무의식과 의식 사이를 넘나드는데, 이때 과거, 현재, 비현실, 현실이 뒤엉켜 등장해. 함께 꿈꿨던 이상세계 구축에 동참했다 갈라선 동지를 떠올리거나, 이모의 젊은 시절을 환상처럼 목격하면서 말이야. 간단한 수술도 견디지 못하는 몸 상태는 면역체계의 붕괴가 그 원인이야. 소설은 주인공의 몸을 빗대어 무너진 동독체제를 비판하고 있어. 체제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국가가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병든 몸을 통해서 말하고 있거든.
소설에서 주인공의 생사를 넘나드는 여정을 마취과 전문의인 ‘코라 바흐만’이 함께해. 그녀의 이름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어서 나는 소설 읽으면서 붕괴한 면역체계의 해결책은 몸의 해체, 죽음이려나 생각했거든. 응? 왜 죽음 이미지냐고? 지하의 신 하데스한테 납치됐다가 어머니의 노력으로 일생을 지상에서 반, 지하세계에서 반을 보내는 페르세포네의 또 다른 이름이 ‘코라’고, 바흐만은 작가 ‘잉에보르크 바흐만’에서 따온 건데, 바흐만도 죽음과 관련한 작품을 썼거든.
아무튼! 주인공이 가까스로 회복한 후에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해. 의학 치료와 같은 자연과학적인 해결책에서 놓치고 있는 문학의 힘이 그 가능성이야. 이 지점이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위로받았던 순간이었어. 코라도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 주인공과의 여정에서 다른 면모를 보여줘. 코라가 꼭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는구나 싶더라고. 우리가 당장 가시화된 변혁을 끌어내기에는 무력하고 비관적일 수 있지만, 주인공이 찾았던 해답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우리만의 무기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너가 이 소설을 읽고 무엇을 발견할지가 무척 궁금한데... 너는 안 읽겠지...”
참... 기회만 포착하면 여과 없이 영업으로 이어지는 친구 A가 신기해하지만, 좀 질리기도 해서 잘 새겨듣지 않는데, 오늘은 유달리 친구 A가 영업하는 책에 심각하게 끌리는군.
<몸앓이/ 크리스타 볼프(정미경 옮김)/ 창작과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