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202✕년 3월 1일 오전 10시 17분. 친구 A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어났어? 아침은? 아 이제 일어났어? 아니 다른 게 아니고, 내가 갑자기 아침에 느지막하게 일어났는데 말이야. ‘이런 올해도 벌써 2월이 지나갔구나.’ 하면서 갑자기 기분이 너무 이상하더라고. 올해도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 무엇을 했는가 싶고, 아, 산다는 건 뭐지 싶고. 세월이란 뭘까 싶고. 그렇게 생각이 흘러 흘러가다 보니 멜랑콜리해지네. 아무래도 간밤에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를 읽다 잠든 탓인 거 같아.
시인이 쓴 소설이라 그런지 감각적이고 이미지적인 표현이 많아서 밤에 읽으니 더욱 센치해지더라고. 소설에 주인공이 30살을 앞둔 1년간의 심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인데, 주인공이 자아와 삶, 역사, 생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쭉 나열하고 있는데, 그 생각이 너무나도 내가 했던 것과 닮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더라고. 왜 너도 그러지 않니? 어렸을 때 위인전 따위를 읽으며 우리도 계속해서 기억되고 회자 될 만큼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라고, 그렇게 될 거라 믿지만, 사실 그건 극소수의 경우이고,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유명해지거나 특별해지고 싶지 않은 때가 오더라. 나 따위는 잊혔으면 좋겠고,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야. 근데 그게 슬프다는 감정보다는 안정감과 만족감에 더 가까운 거 같아. 근데 한편으로는 이대로가 맞을까 싶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가장 혼란스러운, 그래서 갈팡질팡한 때가 30쯤이 아닐까 말이야. 그렇기에 더욱이 나에게 집중하는 때. 그것이 필요한 때인 거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 더 이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요구되는 바도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하고 말이야. 바흐만의 소설 속 주인공의 엉켜있는 생각과 깨달음을 따라가다보니 올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서 나에게 시간을 오롯이 주자! 이런 결론이 났어! 그래서 말인데, 오늘 오후에 약속 다음으로 미뤄도 될까? 너도 이 책 한번 읽어봐. 지금 우리 때에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어. 함께 책을 읽으면서 함께 최선을 다해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거야! 아! 일단 오늘은 혼자 시간을 보내고 다음에......”
약속을 당일 취소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이렇게나 장황하게, 심지어 독일문학 영업까지 곁들이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ISFP로서 당일 약속이 취소되면 더 행복한 사람. 오늘은 조상님 덕분에 갖게 된 소중하고도 평화로운 공휴일. 아직 5일제인 21세기 어느 직장인은 독립운동가님들의 뜻을 다시 되새기며 잠을 청해보겠습니다.
<삼십세 / 잉게보르크 바흐만(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