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효경 Mar 16. 2023

이방인 취급에 지친 분들에게 바치는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28

  - 이방인 취급에 지친 분들에게 바치는 독일문학       


    역량개발을 하겠다고 귀한 주말 아침을 반납하고 신청한 강의에서 간만에 무례한 이를 만났다. 첫 만남에 호구조사를 서슴없이 하더니 출신지를 말하니 사투리 쓰는 여자는 귀엽다며 사투리를 써달라며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사투리를 쓰는 남성은 멋있고, 여성은 귀엽다는 게 칭찬인 양 떠들어대는 이에게 참지 못하고 거친 사투리를 써버린 바람에 일순간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되었다. 후련함과 후회가 미묘하게 섞여 기분이 마냥 좋지 않아 친구 A을 불러 내어 하소연을 하는데...        



    “맞아! 사투리 쓰면 귀엽다고 말하는 거 제일 싫어. 칭찬이라 생각하겠지만, 결국 사투리 쓰는 사람을 대상화해서 평가하는 건데 그걸 몰라. 사투리뿐만 아니야. 본인이랑 다르면 사람들은 꼭 티를 내요. 티를! 말투, 생김새가 조금만 달라도 말이야. 결국 그게 구분 짓기지 뭐야. 얘기하다 보니 얼마 전에 읽은 대박적인 소설이 생각나는군! 제목이 <눈 속의 에튀드>인데...응? 맞아. 작가는 일본 사람이야. 근데 독일어로도 소설을 써.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가 지금 상황이랑 잘 맞는 거 같아!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게 주요 메시지거든. 게다가 이러한 질문을 북극곰 입장에서 던지는 게 이 소설의 매력이지! 소설은 북극곰 3대의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할머니 북극곰 파트가 가장 좋았어. (할머니 좋아.) 소설 속에서 그녀는 서커스 경험을 포함한 어린 시절부터의 자서전을 쓰고, 소위 대박이 나.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입장에서 자서전을 쓰는 북극곰을 이해하려 하고, 판단하려 해. 근데 뭐. 당연히 어긋날 수밖에 없고, 그녀는 이런 인간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 모국어로 글쓰기를 강요당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 엄마의 존재가 모호했던 그녀에게 모국어란 무슨 의미인가 싶더라고. 소설에서 경계에 서서 애매하게 비켜나 있는 이들을 구분 짓는 것을 북극곰의 시선에서 유쾌하게 지적하지. 아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지. 독특한 설정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해주는 거 같아. 소설 읽으면서 그간 무례했던 말과 행동에 상처받았던 마음이 위로받는 거 있지. 정체성은 성별, 지역으로만 규정되지 않고, 이 또한 유동적일 수 있는데 말이야......”   


  

   검색해보니 일본어로 먼저 쓰고, 독일어로 다시 쓴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한 거던데, 이걸 독일문학으로 봐도 되냐고 물었다가 귀가 아플 정도로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 어쨌든 한 언어로 글을 쓰는 것도 힘든 일인데, 두 언어로 글을 쓴다는 건 무척 매력적인 일인 거 같다. 저기 쌓여있는 학습지의 먼지를 털어본다.    


 <눈 속의 에튀드 / 다와다 요코(최윤영 옮김)/ 현대문학>   

매거진의 이전글 흔들리는 생의 순간을 지나고 있는 이에게 추천하는 소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