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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경 Mar 30. 2023

기다림이 불안함으로 변한 이들을 위로하는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29

  - 기다림이 불안함으로 변한 이들을 위로하는 독일문학      



     “무슨 일이 있는 거지? 그런 거지? 오늘 네가 나 불러냈잖아. 그렇게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줄을 서야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같이 가자고 한 건 너였잖니. 가게 외벽을 쭉 둘러싸고 기다리고 있는데, 너는 올 기미가 안 보이네. 너가 연락이 안돼서 일단 줄은 섰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드네. 내가 싫어진 건지. 나에게 부러 벌을 주는 건지. 내가 뭘 잘 못했더라... 아니지? 어서 와. 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동행인이 없으면 입장 불가래. 그래도 날이 많이 풀렸다. 밖에 있어서 많이 춥지는 않네.(훌쩍) 너 도착하기 전에 입장 순서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오매불망 너를 기다리다 보니 생각나는 소설이 있구나. 동독 대표작가였던 안나 제거스의 <통과비자>. 내가 한동안 안나 제거스에 푹 빠져서 몇 번 얘기했었는데,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은 1940년 초여름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한 마르세유야. 마르세유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기 위해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고, 하염없이 배를 기다려. 비자, 통과비자, 출국비자가 필요한데, 이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각종 서류가 필요한데, 서류마다 마감 기한이 달라서 날짜가 하루가 모자라서 서류발급이 무산되는 일이 허다해. 그래서 매일같이 대사관 등지를 떠돌며 사람들이 서류를 발급받으려고 안간힘을 써. 나름 철저하게 서류를 구비한다 해도 배를 타기 직전까지 변수가 생겨서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심지어 머물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통과비자를 요구하는 거야. 머무는 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겠지. 전쟁 중에 안전하게 머물 곳을 찾아 떠나고자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들의 상황과 지금의 나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생각이 나네.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풀어내다 보니 사람들의 불안한 심정이 섬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거든. 불안한 감정이 싫은 이 새가슴은 저 줄어드는 줄이 너무 두렵다. 빨리 와라. 앞에 2팀밖에 안 남았어. 앗. 이제 1팀이야. 직원이 물어봐 몇 명이냐고. 너 도대체 어디니?...” 




   인스타에서 저장해두었던 브런치 맛집이 아침부터 엄청 줄을 선다고 해서 친구 A를 꼬셔서 약속을 잡았는데, 그만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 친구 A의 수십 개의 부재중 전화. 음성메시지를 들으며 서둘러 가고 있는데, 아 진짜 이거 평생 우려먹을 거리인데... 제발 내가 도착할 때까지 입장하면 안 되는데!     



 <통과비자 / 안나 제거스(이재황 옮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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