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월급이 들어오는 날. 친구 A와 외식을 하러 나왔다. 작고 소중한 월급에 하소연하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심오한 이야기로까지 흘러갔다. 친구 A는 지금까지 보았던 모습 중에 가장 느끼한 목소리를 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사람이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오직 사랑뿐이야.’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소설에서 나온 문장인데, 맞는 거 같아. 살아보니깐 맞아. 결국은 사랑이야. 나 알잖아? 대놓고 사랑 이야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근데 이렇게 잊지 못하고 질척이는 사랑 이야기를 읽으니깐 못났던 지난날 나의 모습이 겹치면서 묘하게 안심이 되더라고. 모니타 마론의 <슬픈 짐승>이란 소설인데, 독일이 통일하고 난 이후 혼란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소설을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빗대어 사회의 부조리를 말한다는 설명도 있는데, 나는 그냥 사랑 이야기로 읽고 싶더라. 노년의 나이로 추정되는 주인공이 마지막 애인을 잊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서 떠나간 애인에 대한 기억만 붙잡고 살아가는 이야기야.
그녀의 사랑은 떳떳하진 못했어. 각자 가정이 있었거든. 가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애인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꼭 떠났어. 점점 주인공이 애인에게 집착해. 독점하고 싶고,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지. 주인공이 사랑과 집착의 애매한 경계를 걷고 있을 때 하는 행동과 감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아니더라. 본인은 또 그걸 찐사랑이라 생각하겠지. 소설의 서술은 철저하게 주인공의 기억에 의존해서 전개되다 보니 시간의 흐름도 뒤죽박죽이야. 애인에 대한 기억 말고 유년 시절의 기억도 끼어들면서 혼잡하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거야. 게다가 과연 그 기억이 진짜일까라는 의심이 들기까지 해. 기억이란 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기 편의대로 각색되기 마련이잖아.
근데 과연 기억은 틀린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는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한 번의 사랑을 지나온 기분이야. 보통 우리는 불같은 사랑은 청춘의 것으로 치부하고 마는데, 주인공의 애틋했던 사랑은 중년 때 이루어진 거거든. 그것 또한 마음에 들더라. 그나저나 그XX 디엠을 보냈더라. 다 차단한 줄 알았는데. 나는 또 마음이 심란해졌지뭐야. 글쎄 뭐라고 남겼냐면......
소설 영업은 급물살을 타고 친구 A가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애인 이야기로 이어졌다. 반쯤만 귀를 열어두고 적당히 맞장구를 쳐가며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들으며 나는 과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떠올리고 있었다. 글쎄... 그런데 아무튼 나는 사랑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짐승 / 모니카 마론(김미선 옮김)/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