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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경 Jun 01. 2023

구덩이에 빠져있을 때 같이 빠져줄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33

  - 체념과 절망이 뒤엉킨 구덩이에 빠져있을 때 같이 빠져줄 독일문학  


   

     밤공기를 가르며 오래간만에 달리기를 하고 쉬고 있는데, 마침 산책 나온 친구 A를 우연히 발견하고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참으로 불투명한 각자의 미래를 걱정하며 신세 한탄을 하던 중 친구 A의 눈이 반짝이는데...        



  “그래! 바로 내가 원하는 게 이거거든. 뭘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고! 내 사정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좋아질 거라고 말하는 거 말고.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그지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같이 욕해줄 수 이가 필요하단 말이야. 아니 근데 이런 내 고민과 바람을 담은 소설이 있는데, 제목이 <우체국 아가씨>이야. 1차세계대전 이후 유럽 시민의 삶이 어떻게 고되고 절망적이었는지 알 수 있겠더라고. 주인공은 유년 시절에 전쟁이 터지면서 가족을 잃고, 가난하게 살아가면서 웃음도 잃고, 아픈 엄마도 돌봐야 하는 우체국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이야. 그야말로 전쟁이 청춘 따위 뭉개버렸지.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던 어느 날 잊고 살았던 미국으로 떠났던 이모가 휴가차 유럽에 왔는데, 조카딸을 초대한다는 편지를 쓴 거지. 이모가 그 사이 부자가 된 거야. 


영화 Rausch der Verwandlung (1988)


그래서 여행 내내 이모가 비용도 대주고, 옷도 머리도 해주는 거야. 소위 부자놀이한 거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그렇게 젊음! 청춘! 빛남! 그거 다 했는데, 사실 그게 자기가 아니잖아. 현실로 돌아오니깐 주인공은 더 심하게 좌절하고 절망해. 모든 것에 의미를 잃은 거지. 다른 삶의 모습도 있다는 거 알아버리니깐 내 처지가 더 비참해지는 거지. 근데, 그렇다고 부자가 되겠다는 결심도 못 해 그건 불가능한 거 너무 잘 알거든. 와. 이거 완전 요즘 우리 아니냐고. 주인공이 힘들어서 애먼 데에 화만 내며 지내다 우연히 자신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주는 이를 알게 돼. 그는 이런 상황에서 구출해 줄 수는 없지만 마음을 이해해 주니 여자는 조금 숨통이 틔어. 사실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건 구원이기보다는 구렁텅이에 기꺼이 함께 있어 줄 사람아닐까? 싶어. 적어도 나는 그렇거든. 아 근데 대박은 이거 독일소설치고 너무 술술 읽히고 재밌어... 진짜 내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니깐! 아 진짜라고!...”



영화 Rausch der Verwandlung (1988)


   독일소설이 술술 읽힌다는 말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한참을 실랑이하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구원보다는 진흙탕에 같이 뒹굴어 줄 친구가 있다는 거는 무척 힘이 되는 거 같다. 그래도 로또에 희망을 걸어본다.            



 <우체국 아가씨 / 슈테판 츠바이크(남기철 옮김)/ 빛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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