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즐거워 지나치게 과음하고 말았다. ‘술을 먹으면 이제 나는 인간도 아니다.’라며 내뱉으며 숙취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는 정도가 돼서 친구 A에게 숙취해소제를 사달라 부탁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 널브러져 있는 나에게 드링크제를 건네주는데...
“너, 이제 어리지 않다! 이러다가 평생 술은 입에 못 대는 수가 있어. 적당히 즐기면서 마셔야지. 이 술꾼아! 쯧쯧쯧 널브러진 술꾼을 보니 소설이 떠오르는군. 작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단편소설 <성스러운 술꾼의 전설>이야. 주인공도 너처럼 맨날천날 술 마시고 다니는 알코올중독자거든.
너도 중독자지! 이 정도면 중독자거든! 집도 절도 없이 센강 다리 밑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안드레아스에게 어느 노신사가 200프랑을 건네줘. 근데 자존감 있는 안드레아스는 갚을 방도가 없으니 거절해. 그때 노신사는 다른 대책을 알려줘.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생 마리 드바티뇰 성당’ 안에 있는 작고 신성한 성녀 ‘테레제 폰리지’에게 돈을 갚으라고 말이야. 적선을 받은 게 아니고 갚으면 되는 문제이니 안드레아스는 돈을 받거든. 그러고 알코올중독자답게 그는 받은 돈으로 술을 마셔.
그런데 희한한 거는 돈을 쓰면 쓴 돈을 메꿀만한 일이 생기고, 그렇게 소소하지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 우연히 일용직으로 일을 할 수 있었고, 유명인 동창을 만나서 머물 곳과 정장을 얻기도 해. 언제나 그렇듯 돈을 잃는 경우도 있었어. 대신 술값을 내주거나, 꿔주기도 했거든. 그럼에도 안드레아스는 매일 취할 만큼 마실 수 있는 술값은 가지고 있었어. 그렇게 성당에 가서 돈을 갚을 기회가 계속 지연되고 연기돼. 안드레아스는 과연 돈을 갚고 싶었을까? 소설을 읽는데, 이 술꾼에게 성스럽다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지더라. 보통 성인의 타이틀은 타인에게 기적을 행할 때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에게 기적은 본인에게 향해있고, 그마저도 너무나도 소소해서 기적이라는 이름이 거창해 보이기까지 했거든. 노신사가 건네준 200프랑을 술값이 아닌 곳에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 짧지만, 여러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지...”
친구 A가 이 소설을 숙취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하는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소설 속 술꾼의 결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과연 그는 성당에 가서 돈을 갚았을까. 매일 생겨난 적은 돈을 술값에 다 쓰면 이런 지경까지 이릅니다. 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려나. 아 숙취가 더 심해지는 거 같다.
<성스러운 술꾼의 전설/ 요제프 로트(진일상 옮김)/ 지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