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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앞에 용기가 필요할 때 추천하는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by 박효경

호들갑 독일문학 71

- 새로운 시작 앞에 용기가 필요할 때 추천하는 독일문학


제법 쌀쌀해진 날씨지만, 친구 A와 주말에 점심을 함께 먹고 동네를 산책하고 있었다. 주황빛의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단풍이 조금씩 물든 동네를 산책하니 가을이 온 게 실감이 나는 듯했다. 풍경을 감상하고 걷던 중에 편의점에서 나오면서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길바닥에 버리는 사람을 목격했다. 나와 친구 A는 혀를 차며 그 사람이 지나고 나서 쓰레기를 주어다 근처 쓰레기통에 넣었다. 나는 절대로 저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반면교사도 교사야! 역시 넌, 어디서든 배울 점을 발견하는구나. 하긴, 어떤 순간에도 배울 점은 늘 있는 법이지. 내가 이번에 재미난 악한소설을 발견했는데 말이야. <사기꾼 방랑 여인 쿠라셰의 인생기>라는 제목에서부터 주인공이 범상치 않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지 않니? 방랑자, 사기꾼이라. 이런 사기꾼에게도 배울 점이 있더라고. 바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도 끊임없이 새롭게 시작한다는 점이야.



소설의 배경은 유럽의 그 유명한 30년 전쟁이거든. 지난한 전쟁 동안 주인공은 여러 차례 꾀를 부리고 전략을 세워서 자신을 보호하며 살아가. 침략당한 도시에 사는 여성이 얼마나 쉽게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겠어. 주인공은 남장한다거나, 기병대장, 백작 등 권력 또는 재력을 겸비한 남성과 결혼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할 방안을 끊임없이 강구해. 요즘 시대에서 보자면, 남성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게 수동적이라 볼 수 있겠지만, 전쟁 중이었고, 당시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주체적인 여성의 새로운 면모가 아니었을까 싶거든. 무엇보다도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알았고,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여성이 내 욕망을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건 당시에 더 어려웠을 거라고 봐.



게다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실패하더라도 절대로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상황을 점검하고 나아가. 캬, 이렇게 끊임없이 새롭게 시작하는 거. 그거 쉽지 않잖아. 몇 번이고 실패하는데,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방법을 도전하는 이러한 자세. 아 참, 이 소설 또 특이한 지점이 뭐냐면 <모험적 독일인 짐플리치시무스>의 스핀오프 소설이라는 거야. 짐플리치시무스가 남자 악한소설이라고 하면, 쿠라셰는 여자버전인거지. 작가는 사실은 여자가 아니었을까도 싶어.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아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걸까?...”



허허, 그러게 말이다. 내가 좀 누구에게서든 잘 배우지. 나는 너를 보면서 배운다. 어디 가서 적당히 호들갑 피우며 얘기해야겠다고 말이야.




<사기꾼 방랑 여인 쿠라셰의 인생기/ 한스 폰 그리멜스하우젠(김미란 옮김)/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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