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슬슬 연말 모임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단추에 전화를 걸었는데, 한달음에 달려왔다. 친구 A에게 받은 향이 좋은 차를 내리면서 함께 연말 모임 식사 메뉴를 고민했다. 얼마 전에 새롭게 발견한 중식당이 생각나 탕수육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얘기를 나누던 때, 단추는 오리의 근황을 말해주기 시작했는데...
“어쩌나, 오리가 아마도 탕수육은 못 먹을 거예요. 오리가 요즘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지더니 턱이 아픈가 보더라고요. 부드러운 거만 먹을 수 있댔어요. 아니, 그거 알아요? 턱관절 장애의 환자 대부분이 여자래요.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참느라 이를 꽉 깨무는데 그게 턱관절에 무리가 가서 턱관절 장애가 온대요. 뭐든 쌓아두면 안 돼요. 표출 해야지. 내가 뜨개질을 왜 배웠겠어요? 잡념 없애고, 스트레스 푸는 데 뜨개질만 한 게 없다고요. 안 그래도 내가 오리에게 뜨개질을 추천해 줬거든요? 근데 A씨가 벌써 책을 추천했더라고요. 작가가 실제 병원에 입원했던 경험을 담아 쓴 소설이라더라고요.
제목이 <정신병동 수기>라던데요. 우울증이 심한 주인공이 치료를 위해서 6주간 정신병동에 입원해서 관찰하고 겪은 이야기를 쓴 이야기더라고요. 같은 병동에 여러 여성 환자가 등장하는데요. 이들 사이에서도 묘한 신경전도 있더라고요. ‘여교사’, ‘여왕’, ‘십자가에 매달린 여자’ 등 이름이 붙여진 같은 병동의 환자들을 관찰하는 얘기가 나온대요. 어휴, 나는 좀 그래요. 작가가 사실은 살아있을 때는 출판하기 싫어했대요. 그런데 우리가 이런 얘기를 읽어도 되려나 싶더라고요. A씨가 이런 이야기를 추천해 준 연유가 궁금했는데, 주인공이 글을 써내면서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고 추천을 했더라고요.
나는 골치 아픈 글쓰기보다는 뜨개질이 더 나을 거 같은데, 오리는 어땠으려나. 그나저나 우리 샤브샤브 어때요? 푹 삶아서 턱에 무리가 안 갈 거 같은데, 뜨끈하고 뭔가 연말 느낌 나지 않나요...?”
사실 오리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오리가 뜨개질을 시도하다 엉켜버린 실을 풀고, 또 풀다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고. 뜨개질은 당분간 하지 않을 거라고. 반면, A가 추천해 준 소설 속 고통받는 인물의 감정과 상태가 세세하고도 덤덤하게 서술되어 있는걸 보고 오히려 위로받았다며 말해줬다. 주인공이 글로 답답함을 풀어내듯 자신도 그간의 울분을 하나의 이야기로 쏟아냈더니 한결 가벼워졌다고 말이다. 단추에 아무래도 뜨개질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는 얘기는 숨기는 게 좋을 듯하다.
<정신병동 수기/ 크리스티네 라반트(임홍배 옮김)/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