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것들을 사들이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이런 것은 누구도 사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할 법한 것들을 사는 게 내 작은 취미이기도 하다. 내 책상과 책장 위에는 그런 것들이 널려있다. 아이들 과자에 들어있는 - 그것으로 소비자들을 회유하는 -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인형들, 그런 인형들이 자거나 앉거나 누울만한 플라스틱 가구들. 뽑기에서 뽑은 정체불명의 잡동사니들, 잡동사니를 세우기 위한 또 다른 종류의 잡동사니들. 대부분 너무 작거나 본 기능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들거나 기능이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기능이란 게 뭐 그리 중요한가.
이런 소비가 즐거운 이유는 이 물건들이 쓸모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앙증맞음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이토록 귀여운데 제대로 된 청소기나 가방같이 실용적이라면 매력이 없어진다. 컵을 예로 들자면, 컵이 실용적이기 위해서는 음료의 양이 많이 들어가거나 보온성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그 기능보다 귀여운 기능을 중요시하는 컵들은 먹기 힘들게 뾰족하다거나, 손톱만하거나, 컵 안에 고양이 하나쯤이 앉아 있어서 씻기도 힘들어야 하는 것이다. 가방은 뭘 넣기도 애매한 크기에 손잡이도 약해서, 소풍갈 때 작은 과자봉지 몇 개밖에 넣지 못하는 그런 가방이어야 하고, 손전등은 크고 밝기가 센 것보다는 닥터의 타디스 모양을 한, 고작 글씨 몇 개 비출 줄이나 아는 그런 손전등이어야 한다.
한번은 친구를 보러 홍콩에 갔을 때, 거기서 뒤꿈치에 리본이 달린 양말을 보고는 가게로 달려 들어갔다. (나는 양말을 좋아한다.) 양말 화보집이 있다면 분명히 선택될 양말 같아서 나는 두 개나 골랐다. 점원은 건성으로 4켤레를 사면 1켤레를 더 사준다고 영어로 말해주었다. 나는 그런 말투에도 ‘ 아 그럼’하고는 양말 두어 개를 더 고르기 시작했고, 친구는 내 손목을 잡고 이런 것을 다섯 개나 사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한 켤레에 만원이나 하는 양말이었는데, 내가 정신이 빼앗겨 값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결론적으로 2켤레 구입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물론 평소에 사던 양말보다는 비쌌지만 리본이 예쁘게 달려있는 모양이 내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홍콩에서 떠나기 전 어느 날, 친구는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했다. 그날 상점을 돌다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가 새겨진 작은 곰돌이들의 가게를 발견했다. 그 곰들은 자신의 생일이 새겨진 자신보다 더 작은 컵과 함께 세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나는 내 생일이 새겨진 컵을 들었고, 곰을 골랐다. N자가 새겨진 노란 티를 입고 있는 곰이었다. (N은 내 옛날 별명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핸드폰 고리도, 열쇠 고리도 될 수 있도록 두 가지 줄이 달려있었다. 곰의 귀와 팔과 다리 모두가 미세하게 비대칭이었지만 그 때문에 엉성한 매력이 한층 더 빛을 발했다. 나는 손바닥의 3분의 1정도 되는 조그만 곰돌이와 손잡이가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은 컵을 선물 받았다. 친구는 ‘이걸로 되겠어?’라고 물었지만,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가끔은 내가 그런 귀여운 것들처럼 쓸모없이 굴어도 경제 활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것은 내가 사 모으는 쓸모없는 것들이 사실은 쓸모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제품들이 이것을 만들고 유통하는 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며, 또 가장 중요한 쓸모란 바로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기쁨을 준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그런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누군가 나로 인해 기뻐했을까라는 물음에 도달한다. 그럼 어제 웃으며 대화 나누던 친구가 생각나고, 그의 말에 폭소하던 나와 그 폭소에 따라웃던 그의 소리가 떠오른다.
친구 사이라면 대부분의 시간에는 서로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상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은 오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서로가 어떠해야 한다고 정해 놓지 않기 때문에 관대해질 수 있다. 또 그래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설마라도 우리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이 모든 관점을 해석해 전해주는 칩를 뇌에 꽂는 날에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가 서로 말을 나누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하면 되니까. 하지만 어쩌면 말과 접촉이 그리워 칩을 다시 머리에서 빼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네가 누구라도, 어떤 사람이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친구를 찾아갈 것이다.
친구의 선물, 곰돌이에게는 역시 별 쓸모없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곰돌이는 자신의 뒤통수에 별이 박힌 조그만 손수건까지 넣어 놓고 있었다. 이것을 발견한 순간보다 그날 기쁜 순간은 없었다. 머릿속에 안경닦이 소재의 손수건까지 품고 있는 작은 곰돌이를 선물 받은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웃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는 하다. 내 리본 달린 양말 말이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운동화를 신으면 리본이 우습게 접히는 데다가 내 아킬레스건을 눌러서 아프기까지 해서 결국 떼어버렸다. 그리고 리본이 있던 곳에는 새끼손톱만한 구멍이 생겨서 집에서 신는 집양말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그 리본만큼은 내 -정돈된 적 없는 - 화장대에 고이 모셔져 있다. 조만간 그 리본으로 핀을 만들어볼까 한다. 그 핀을 머리에 꽂을 일은 없겠지만, 아주 예쁜 삔이니까 역시 소용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