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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스텔라 Sep 03. 2024

학교에서의 인종차별

크고 작은 인종차별은 나의 일터, 학교에서도 발생한다. 내가 선생이라고 해도 인종차별은 피할 수 없다.


통계를 보면 독일 전체에 외국인 학생은 2018년도 11%에서 2023년 22%로 두 배 상승한 반면, 외국인 교사의 비율은 2018년 0.8%, 2023년 1.0%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이처럼 학교 내 외국인 학생 수는 매년 늘고 있지만, 외국인 교사의 수는 여전히 적다 보니, 외국인 교사를 볼 때마다 학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1. 무지함에서 비롯된 인종차별

한 번은 길을 걷던 중 한 동료 선생님이 "니하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불쾌함을 내비치며 "그건 중국어야"라고 말했다. 그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딸이 이 언어를 배우고 있어서 집에서 자주 듣다 보니 한국어인 줄 알고 열심히 외워서 나에게 인사했다고 덧붙였다. 칭찬받을 줄 알았던 그는 내가 정색하자 놀라서 연신 사과했다.


학생들도 이렇게 '무지에서 나온 인종차별' 발언을 하곤 하는데, 어디서 왔냐, 한국이 어디에 있냐, 한국은 중국어를 쓰냐 등등의 말을 하곤 한다.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면 끝도 없는 데다가 그들은 정말 몰라서 질문하는 것이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알려주기로 한다.


2. 악의적인 인종차별

하지만 악의를 품은 인종차별도 존재한다. 내 이름을 일부러 다른 식으로 부르는 학생도 있다. Frau Ha 가 너무 짧으니 Frau Haschou 하쇼우 로 부르겠다는 것. 처음에는 웃고 넘어갔으나 매번 그러니 상당히 거슬린다. 그 아이의 이름은 Max 막스(예명)인데 하루는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막스 대신 Maxshou 막쇼우 로 불렀다. M은 나에게 "내 이름은 막스야!"라고 항의했고 나 역시 "나는 프라우 하야!"라고 하며 서로의 이름을 다시금 확인했다.


또 한 번의 악의적은 인종차별은 6학년 교실에서 발생했다. 동료 선생님의 부재로 인해 6학년 수업을 대신할 때의 이야기다.

아는 아이들이 없는 학급에 추가근무로 인해 짜증이 있던 내가, ‘지루한’ 수업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수업 중에 한 명이 “중국! 중국!” 하며 낄낄대며 날 조롱했다. 나는 앞으로 나오라고 한 뒤 내 앞에 세워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라고 했는데 사춘기 아이답게 “안 하면 되잖아, 크크크”라며 예의 없게 말했다.


나는 그와 눈높이를 정확하게 맞추고 눈을 바라보며 “너는 지금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 나는 전혀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정색하며 얘기했다.

모든 반 아이들이 쳐다보며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지만, 이곳은 나의 일터이고, 내 학생들이 나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그 아이와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나는 그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두고 말없이 눈을 쳐다봤고, 그 아이는 몇 분의 정적 후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후에 수업을 다시 시작했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서 좌절감이 몰려왔다. 옛날이었다면 이런 마음을 품고 집으로 가서 몇 번이고 되씹으며 속상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한 번은 부딪쳐야 할 상황’이라 생각했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


나는 학교장과 6학년 담임 선생님에게 상황을 설명을 하였고, 그 아이는 교장실에 불려 가 엄청난 꾸지람과 경고를 받았다고 전해 들었다. 한 번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퇴학 조치까지 하겠다는 얘기가와 함께.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6학년 아이들, 특히 그 아이를 만날 때마다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우리 반 실습생이었던 E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부모님이 콩고에서 독일로 이민을 온 그녀는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독일인이다. 그런데도 피부가 어둡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녀에게 "너는 아프리카에서 왔지?"라고 당연하게 말하거나, 아프리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올 때마다 E를 가리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참.. 세계는 글로벌해졌다고 하나 사람들의 생각은 여전히 꽉 막혀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는 분노하고 화가 났던 차별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짐을 느낀다. 같은 일이 발생해도 옛날처럼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많이 무뎌진 거겠지.


그런데 무뎌지는 게 과연 옳은가?

외국인으로서, 혹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게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 ’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나? 난 아직도 모르겠다.



참고: Statistisches Bundesamt (Destatis)

사진출처: Wie Lehrer Jugendliche gegen Rassismus und Diskriminierung stark machen können | News4teac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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