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학교에 다녀왔다.
학생들이 없는 고요한 학교를 나는 아주 좋아한다. (하하 학생들이 없는 학교라니.)
개학을 앞두고 교실 정리와 수업 프린트 자료 등을 여유롭게 준비하던 중, 갑자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누구지? 우리 반 애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쉬는 날 아이들을 만나면 일하는 기분이 들어서 왠지 꺼려지기 때문에..)
살~짝 쳐다보니, 그 소리의 주인공이 학교 부적응으로 한 학년 (2학년에서 다시 1학년으로) 유급당한 내 학생임을 알았다.
그 아이는 9살의 어린 나이지만 5살부터 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학교 기숙사에는 고학년 20명, 저학년 20명, 총 40명이 살고 있다.
이 중 30명은 집과 학교의 거리가 멀어서 기숙사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금요일에 집으로 가서 월요일에 학교로 오는 아이들이고, 40명 중 5명은 학교에 다니지도 않는 학생들인데, 이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로, 집에서 케어가 불가능하여 기숙사에서 1:1 케어를 받으며 지내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40명 중 5명은 가족이 없이 365일 기숙사에서만 지내는 아이들인데, 이 5명 중 한 아이가 내 학급 학생이었던 A이다.
부모의 잦은 학대와 약물 중독으로 아동학대에 노출되었던 A.
아동학대신고로 인하여 기숙사에 '강제'로 들어오게 된 케이스다.
A는 현 담임도 아닌 내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나만 보면 달려들어 안기곤 한다. 이 날도 역시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서는 내 품에 파고들었다. (녀석.. )
또래에 비해 유난히도 키가 작고 왜소하지만 아동학대로 인해 보고 배운 게 폭력이라 폭력적으로밖에 표현을 못하는 아이. 그리고 항상 사랑을 표현받고 싶어 하는 아이.
유급된 학급에서는 다행히 개인 보조교사도 따로 생기고 치료를 받으러 다니니 지금의 학급에서는 폭력성이 많이 낮아졌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갈 곳이 없이 365일 매일 학교에만 있으니 A의 세상은 학교 안, 그리고 병원이 전부다.
나는 휴일에도 자주 학교를 가서 업무를 보는 편인데, 갈 때마다 거의 마주친다.
그리고 아이는 그때마다 달려와서 안긴다.
A는 나에게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놀았는지 작은 입으로 이야기해 준다.
나는 옆에 있는 보육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마침 염소에게 먹이를 주러 가는 길이었기에 함께 가기로 했다.
염소 역시 학교가 온 세상의 전부인 동물. (아,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좁고 제한적 일지.. 마음이 무겁다.
A와 함께 염소에게 먹이와 물을 주고 다시 학교 안으로 걸어 돌아오면서, 아이는 내 손을 잡으며 종알종알 많은 얘기를 했다. 특유의 보조개 웃음을 보여주며..
학교 안 정원에는 우리 반 아이들이 꾸며놓은 길이 있는데, 그곳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이곳은 우리 반 친구들이 만든 거지? 나는 다른 반에 있어서 함께 못했어.”라고.
아직도 내가 자기 담임인 줄 아나보다.. 흑흑
그 아이를 마주칠 때마다 항상 마음 한편에 미안한 마음이 늘 있다.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아이를 담임으로서 또 한 번 버렸다는 미안함..
외출조차 자유롭지 못한 이 불편한 현실 속에서, 내가 그의 단조로운 일상에 작은 행복을 더해주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