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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스텔라 Sep 02. 2024

전화위복: 불쾌한 경험이 준 새로운 취미

요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린다. 사실, 이런 나의 취미는 꽤나 불쾌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등학생 때, 그림 과외를 받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과외 선생님은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고, 미술 수업은 대부분 연필로 음영을 넣는 작업이었던 지라 너~~~무 재미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술에 대한 흥미는 사라졌고, 그 이후로 20년 넘게 그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좋은 그림을 봐도 감흥이 없었고,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렇게 그림과 담을 쌓고 살던 중 동료 선생 하나가 전시회를 한다고 했다. 평상시라면 그림 전시회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 그날은 왠지 가고 싶었다.


전시회에 들어가서 설명을 듣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발견했다. 가격은 900유로, 한화로 135만 원 정도. 그 동료 선생은 내가 만약 사게 되면 800유로에 주겠다고 하였다.

솔직히 가격이 조금 부담되었지만,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그 그림은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주제: 수평선

기쁜 마음으로 벽에 걸려있는 순간,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을 발견해 버렸다.  


그건 바로 찢어진 캔버스!!


캔버스가 찢어져 있었고 그 뒤에 찢어진 부분을 천으로 덧대어 가려 놨다... 이건 사기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고, 그 동료 선생에게 그다음 날 학교에 가서 상황을 설명했는데 정말 껄끄러운 상황이었지만, 결국 반품하기로 하고 그림을 며칠 뒤 다시 갖다 놓았다.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허허)


그렇게 그림을 반품하고 나니 원래 걸었던 그곳이 휑해 보였다.

그렇다면 그냥 직접 그림을 그려볼까?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물감과 캔버스를 주문했는데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800유로까지는 아니기에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그리기를 시작하였다.

그림 그리기는 꽤 재미있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내가 참 교만했다.

포부 있게 엄청 큰 캔버스 100x100을 구입했는데 붓질을 왔다 갔다 하려니 팔이 너무 아팠다.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 그림을 완성시키고 벽에 걸긴 했는데 당연히 아마추어 티가 확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0유로를 아꼈다는 생각에 만족하며 그림을 그냥 걸어 놓는다.

바다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슈무지

이렇게 한번 그려보니 근거 없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또 다른 캔버스를 사서 그림을 그려보기로 한다.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그리다 보니 당최 뭘 그린 건지 싶은 실패한 그림들이 연속으로 생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기를 계속한다.

밤 하늘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실패..!
서핑하는 슈무지를 그리고 싶었으나 또 실패!!


그림을 그리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그리는 동안에는 오로지 색깔에만 집중할 수 있고, 머릿속에 생각했던 그림과 내가 그린 그림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완성된 것을 보고 있노라면 꽤 만족스럽다.


점점 욕심이 생기고 아무래도 전문 수업을 받아야 될 것 같아 세미나 신청을 한다.


세미나가 이번 겨울에 있으니.. 그때까지 그냥 막무가내로 이것저것 실험 그림을 그려 보도록 하며 물감을 또 짜보자..

그래도 보고있으면 기분은 좋다!


P.S. 헌데.. 주위에 그림 그리는 사람은 죄다 선생이다. 선생이었거나, 선생이거나.

시간이 많이 남아 그런걸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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