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스텔라 Sep 10. 2024

채식주의에 관하여

Vegitarien? Flexitarien!

이건 몇 년 전, 교사로서 첫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교 부지가 어마어마하게 컸던 터라 말, 토끼, 고양이, 거위, 오리, 닭, 양 등등 많은 동물들이 살았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 수업시간 또는 아침, 점심 먹는 시간에도 자주 밖으로 나가서 동물들과 가깝게 지냈다.


학급마다 담당하는 동물들도 있었는데 당시에 나는 토끼, 고양이, 거위 그리고 양을 담당하는 학급에 있었다. (당시에 담임이 아니라 여러 학급수업을 들어갔다.)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동물들을 돌보며 사랑을 주는 법, 그리고 보호하는 법들을 자연스럽게 배우는데 나는 이런 학교가 참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안돼!!"라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쪽으로 얼른 가봤다.

무슨 일인고 하니, 한 선생님이 양들을 트럭으로 싣고 있었다. 아이들은 "양 죽이지 마! 하지 마!"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마! 양들은 지금 병원에 가는 거야!" 하며 안심시키고 교실로 보냈다. 며칠 전부터 양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나는 당연히 병원에 가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웬걸.  


그다음 날 양고기가 급식으로 나왔다.


설마.. 아니겠지? 했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가 키우던 양들이었다.


양들이 늙어서 이곳저곳 아프니 도살을 한 거라는데,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금 그때를 떠올리니 불편하다..)

그 학교에서는 자주 이렇게 한다고 한다. 양뿐만 아니라 오리, 닭, 말 등등.



독일 북부에서는 말 소시지 (Pferdewurst)를 별미로 많이 즐긴다.

처음에 접했을 경우 나는 개고기와 같다고 생각을 했고, 매우 부정적이었다.

'인간이 돼지, 소, 양, 오리, 닭도 부족해서 말까지 다 죽여버리는구나'라고.

(글을 쓰다가 알게 됐다. 말고기가 제주도에서 꽤 유명하다는 사실을. 세계를 제패했던 징기스칸을 비롯한 몽골인만 먹는 게 아니었나보다...)


하지만 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말 소시지는 대부분 늙어서 자연사한 말들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 막무가내로 죽여서 먹는 것이 아닌, 이미 죽은 말을 고기로 만들어서 먹는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자연사한 고기들은 판매하게 되면 Tierwohl 이라고 라벨링이 붙혀진다.

Tierwohl &
Bio Tierhaltung
https://www.ndr.de/


독일에는 대략 8만 명의 채식주의자들이 있고 해가 지날수록 그 수 증가하고 있다.  


특히 자연도시, 환경도시라고 알려져 있는 프라이부르크에는 유난히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주위에 있다.

그 수는 통계자료를 찾을 수 없기에 알 수는 없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곳 지역 출신인 이들의 10명 중 5명 이상은 채식주의자이다. (물론, 나의 통계가 편향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왜 고기를 안 먹느냐 물어보면, 이유는 환경 및 생명 보호 또는 본인들 건강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독일 전체에서 통계된 자료를 보면 채식주의자 중 60%가 동물의 복지, 60%는 환경의 이유인데, 세대로 따져보면 전체 채식주의자 중 80%가 30세 미만이다.

한편, 건강의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절반 남짓인데, 이 경우엔 세 명 중 두 명이 60대 이상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프라이부르크에 채식주의자들이 많은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가 제일 큰데, 독일 아니 유럽에서도 제일 진보적인 사상, 환경 운동 등이 벌어졌던 곳이고, 일례를 들자면 이곳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설뻔했는데 강경한 탈핵운동으로 그 계획이 완전히 무산됐다. 

그런 이들이 뿌리 잡고 있으니, 그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환경, 그리고 채식주의를 실천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곳은 참고로 유권자 중 대부분이 녹색당을 지지하기도 한다. 


이런 배경 속에 채식주의자들이 즐길 수 있는 식당이 굉장히 많다.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채식주의식단이 있고, 심지어 학교, 구내식당에도 있고 또한 20군데 이상의 비건레스토랑도 있으니 비건이라고 해서 불편함이 전혀 없다. 나의 지인 중에 얼마 전, 여행 간 이들은 한국에서 비빔밥 말고는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물론, 이 부분에서까지 그들을 옹호하고 싶진 않다.)


한편, 독일에는 비건제품들도 많이 있는데, 어렵지 않게 구입을 할 수 있어서 사람들이 이용을 많이 한다.

나 같은 경우에도 같은 제품인데 비건과 일반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비건제품을 사는 편이다. 가격 차이도 많이 안나기도 하고 괜히 양심에 찔린달까..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아무렇게나 식용으로 길러진 가축을 먹는 것 보다는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사를 한 동물을 섭취하는 게 내 몸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해서 이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고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동물도 사랑한다.

돼지, 소는 먹으면 되고, 강아지 고양이는 먹으면 안 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참 어려운 문제다.


흔히 독일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Ich bin flexitarien!
나는 플렉시테리안 이야.


Flexible 그리고 Vegetarian이 합쳐진 Flexitarien.  

플렉시테리안은 고기를 먹지만, 고기를 적게 먹고 최대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일컷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이것도 그냥 자기 방어식으로 이름을 지어낸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기를 섭취하는건 우리 인간의 삶에 너무도 깊이 깔려 있는 문화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동물들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곳에서 살만 찌우고 무자비하게 도축을 하는건 언젠가는 멈추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의 두 얼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