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소리일기 ep.20
며칠 전, 아파트 기계실 누수로 인한 수리로 온수가 단수가 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어요. 오래된 아파트라 방송이 잘 안 들린 것도 있지만 물이 안 나오는 시간대에 온수를 쓸 일이 딱히 생각나지 않아 그러려니 흘려들었습니다. 그게 저를 식은땀나게 한 원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체….
그날도 즐겁게 산책을 하고 돌아와 발을 씻기려고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 전날 들은 방송은 까맣게 잊고 ‘이거 왜 이래?’를 연신 외치며 이리저리 원인을 찾아왔다 갔다 거렸죠. 별이도 어리둥절해하며 목욕탕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저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방송이 떠오르면서 단수되는 시간대가 별이 산책 다녀온 시간에 겹치는 걸 그제야 깨닫고 말았습니다. 온수 쓸 일이 없다며 흘려들었던 과거의 나… 왜 그랬니?…
하필 그날 산책을 산으로 다녀온 터라 별이 발이 온통 흙발이어서 안 씻길 수가 없었어요. ‘물을 데울까? 지금 데우면 한 5분 이상 걸릴 텐데…. 별이가 그 시간 동안 기다릴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오가다가 결국 발만 초 스피드로 씻기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정말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을 어쩔 수 없이 별이 발에 뿌리고 ‘허버버버버, 어구어구’ 등 알 수 없는 해괴한 소리를 내가며 빠르게 씻겨 냉큼 수건으로 감싸고 나왔습니다. 제대로 씻긴 건지 모르겠지만 우선 나가야 했습니다. 평소에 잘 씻는 별이도 차가운 물은 견딜 수 없었는지 안 씻으려 발 빼고 도망가고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나와서 따뜻한 드라이기로 마무리하고 이불을 쏙 덮고서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요즘 무난한 삶을 살고 있어서 크게 당황할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 뜻밖의 단수 사건은 결국 ‘정면돌파’로 일단락되었습니다. 한 겨울철 따뜻한 온수의 소중함을 물씬 깨닫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