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내 마음속 1등
엄친아, 엄친딸을 마주한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바쁜 일상에 치여서 힘들 때 힐링하기 위해 동물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그곳에 나오는 세상 가장 순수한 동물들의 생활을 보면서 그간 사람들에게 지친 마음을 달래곤 하는데 그중 역시 반려견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가장 흥미롭게 시청한다. 귀여운 반려견들의 오졸 복통 에피소드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데 종종 엄청 똑똑한 반려견들이 나오면 '우와, 우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감탄을 한다. 말만 하면 척척 보호자가 원하는 물건을 물어오는 레트리버, *프리스비와 *어질리티를 엄청 잘하는 보더콜리, 반려견 훈련벨으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웰시코기 등등 다양한 견종에서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자신의 장기를 보여준다. '와... 저런 친구랑 있으면 진짜 편하고 재밌겠다, 아구 나중에 나이 들면 더 안타까워서 어떡해...' 등 감탄과 함께 묘한 부러움과 다양한 생각에 복합적인 감정이 생긴다.
별이는 밥 잘 먹고, 배변 잘 가리고, 산책 좋아하고, 장난도 잘 치는 몸과 정신이 건강한 평범한 반려견이다. 특별히 잘하는 재주는 없고, '손'이라고 해도 자기가 주고 싶을 때 아니면 잘 안 주는 고집 센 슈나우저. 나도 TV에 똑똑한 반려견들을 보면 욕심이 생겨서 별이에게 이런저런 훈련을 시켜보곤 하는데 "별아~ 이거 해봐. 왜 못해?! 할 수 있어! 물어와~" 라며 별이를 닦달해보지만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시크한 별이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럼 나 혼자 괜히 이것도 못하냐며 속상해하기도 한다.
그런 별이를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엄친아, 엄친딸 이야기를 들을 우리 엄마가 왜 내 등짝을 때렸는지 알 것도 같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런 잘난 엄친아, 엄친딸을 보면 부럽고, 내 아들딸도 분명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 아이라는 기대도 있을 테니까... 나도 별이한테 그런 감정이 들었을지도.
그렇지만 만약 누군가가 '똑똑한 반려견과 별이를 바꿀래?'라고 한다면 단언컨대 '열 트럭을 가져와도 No!'.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더니 딱 그런가 보다. 재주가 없다한들 내 눈엔 안 예쁜 구석이 없고 11년을 함께 살면서 이젠 나와 손발이 척척 통하는 소통 천재라 보호자를 위로할 줄도 알고, 필요한 상황에 자기 의사표시도 확실하게 나타내니 내 기준 그런 똑똑이가 또 없다. 재주 부리는 똑똑함과는 또 다른 장르의 똑똑함이지 않을까?
엄친아, 엄친딸을 보고 괜히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엄마들 보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줄었다고 의심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분명 가시임에도 불구하고 제 새끼의 가시는 아프지 않다고 하는 고슴도치의 사랑을 바보라고 뭐라 할 사람 누가 있을까? 모든 부모 눈엔 제 자식이 똑똑하고 예쁘고 사랑스럽듯, 수많은 올바른 반려인들 중 자기 반려견을 이뻐하지 않을 사람 누가 있을까?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 거라면 평생 씌어도 괜찮다. 별이는 내게 가장 똑똑한 반려견이다.
*프리스비:원반을 던져서 물어오는 반려견 훈련 혹은 운동
*어질리티:다양한 장애물을 빠르게 뛰어넘거나 통과하는 반려견 스포츠
*엄친아, 엄친딸:엄마 친구의 아들, 엄마 친구의 딸의 줄임말로 유독 뛰어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엄마 친구의 자식들이라 비교가 된다는 말을 비유해서 일컫는 말.
*함함하다: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