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리추얼 외면일기] 2023.07.14.
2023.07.14. 금요일. 비
우리 동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상경했고, 몇 번 거주지를 옮겼다. 집이라기보다는 '한 칸'에 가까웠던 공간들이다. 대학교 근처에서 계속 살다가 졸업과 동시에 시험준비를 시작하면서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왔다. 이미 몇십 년 전부터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살아온 동네였다. 이사 오기 전부터 그곳에는 사이렌을 울리지 않는 (즉, 자살 또는 고독사한 사람의 유해를 거두러 가기 때문에 급할 것이 없는) 조용한 앰뷸런스가 자주 다닌다는 진실과 괴담이 반씩 섞인 듯한 섬뜩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스름한 새벽에 세수만 대충 한 뒤 아무 옷이나 걸치고 학원이나 독서실로 갔고, 고시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단백질 쉐이크로 점심을 때웠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아무렇게나 입고 수험서를 들고 다니며 혼밥을 하는 동네라 눈에 띄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시험에 합격한 직후에는 아직 이 동네에 살던 동기들이 제법 많았는데 이제는 모두 이사를 나갔다. 어쩌다 보니 나는 아직 여기 남아있고, 이제는 여기서 수험생으로 산 기간보다 직장인으로 산 기간이 더 길어져버렸다.
언젠가는 나도 이사를 가겠지만 여기를 떠나고 나서도 그리워질 것들이 많다. 봄이 되면 하천에 나타나는 참새만한 아기오리 떼. 삼사천 원에 채소가 잔뜩 들어 있는 수제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아침 일찍 여는 가게.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비탈길 위의 조용한 공원. 젊은 날들을 건 사람들의 불안한 희망과 벅찬 소망, 위태한 긴장과 은은한 절망이 섞여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