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파편을 마주한 절제

[M. 버터플라이(M. Butterfly)]

by 조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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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한 여름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에서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는 요정 퍽이 발라놓은 사랑의 즙으로 인해 당나귀의 머리로 분장한 직공 보텀에게 처음 본 순간 반하게 된다. 큐피드의 화살이 효력을 발휘하여 콩깍지가 씌어 상대가 어떠한 모습인지에 상관없이 마법의 덫에 걸려 이성을 잊고 마는 것일까? 이성과 감성의 온도를 이 우주 속에서 측정할 수 있다면, 이성과 감성이 마주 보고 있는 마음의 방향이 가리키고 있는 나침반을 만들 수 있다면, 우주 안에 존재하는 질서는 혼돈의 소용돌이로 파생된 변화의 치명적인 영향에도 굳건히 중심을 잡고 버틸 것이다.


영화는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nry Hwang)의 원작 <M. 버터플라이(M. Butterfly)>를 각색한 작품으로, 르네[René, 제레미 아이언스(Jeremy Irons)]와 송[Song, 존 론(John Lone)]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사작장면은 신비로우면서도 영롱하다.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오페라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의 무대가 연상되는 문이 열리고, 다채로운 색상으로 수가 놓여진 장막이 걷혀지고, 아름다운 나비와 부채가 공중에 차례대로 등장하며 우리를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환상적인 낙원의 이야기속으로 이끌어간다.


르네는 1964년 베이징에 위치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느 날, 경극 “나비부인”을 관람하면서 공연배우인 송의 매혹적인 모습에 사로잡힌다. 르네와 송은 연인이 되지만, 송이 르네의 외교적 지위를 이용하여 중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스파이 임무를 수행한 것이 발각되어 1968년 르네가 체포되고, 송이 남자라는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관계는 종결된다. 르네는 파국에 직면하면서 감옥에서 나비부인의 분장을 하고 삶의 마침표를 찍는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일본인 나비부인(조초상)이 남편인 미국 해군 핀커턴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여 기다리다가 숭고한 사랑을 자결로 표현하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는 표면상으로는 나비가 송이지만, 실제 상처받은 영혼을 대변하는 나비는 르네가 되는 것이다. 르네가 무대위에서 “나비부인”의 역할로 공연을 하는 송을 처음 바라볼 때 지었던 황홀한 표정은 송에게서 신비주의적 면모를 보게 되고 매혹될 것을 예견하게 한다. 동양의 신비주의를 논할 때 등장하는 ‘오리엔탈리즘’은 문학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 사용된 표현으로, 하나의 이론과 지식체계로 굳어진 '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과 편견'을 의미하는 사전적 표현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르네가 송에게 보여주는 감정에 대한 정체성의 양상을 직면할 수 있는 가에 대한 무거운 물음과 연결되기도 한다.


영화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왜 정체성을 찾고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표를 담고 있다. 르네는 송이라는 동양여성에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여성상을 만들어 그 모습을 송에게 투영하여 사랑한다. 자신이 보려고 하는 자화상만을 고집한 채 현실 속의 환상을 부여잡고 놓지 못한 인물이다. 송의 정체성을 알려하지 않고, 스스로 만든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환영의 모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처절하게 찾으려고 한 인물이다. 그러나, 르네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과오를 망각하지 않았다. 르네가 사용한 마침표로 인해 그의 사랑이 장엄한 카타르시스를 통해 감정을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다. 르네의 사랑이 그의 삶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고 해도 자신의 감정에 경이로운 진실을 담아내었기에 그가 채색한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감정은 그 빛을 더욱 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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