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언제부터인가 학교가 아니라 교육현장, 학교현장으로 표현된다. 사전적인 의미에 따라, 학교는 일정한 목적, 교과 과정, 설비, 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다. 현장은 일을 실제 진행하거나 작업하는 물리적인 공간이라 정의된다.
대중매체 등에서 학교라고 표현하지 않고, 학교현장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에서 학문적 이론들만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과 연결되는 지식의 내용이 학습되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으로 추측해보았다.
등교시간이 가까와오면, 많은 학생들이 교문으로 몰렸다. 머리, 교복, 신발 등이 괜찮으며 모두 통과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실내화를 신발 주머니에 넣지 않고,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도,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하지 않고, 당연한 듯 들고 다니는 모습은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런 습관을 고치기 위해 몇 달 동안, 선생님들께서 지속적으로 생활지도를 하셨고, 차츰 학생들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때로 습관을 고치는 상황을 이해는 했지만, 행동은 정정하지 않은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곤 했다.
E는 모범적인 태도와 탁월한 실력을 가진 중학교 학생이었다. 언어소통능력뿐만 아니라, 대화의 문맥속에서 경청하는 태도,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표현하며,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었다. 게다가, 복도에서든, 어디에서든 마주치는 모든 선생님께 정중하게 인사를 할줄 아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손에 실내화를 들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사회에서는 부분의 모습이 고정관념으로 형성되어 편견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가끔 지각을 한다면, 지각쟁이라는 말로 그 사람을 판단하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업무 능력까지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지각을 하는 이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지각이라는 현상과 다른 내용을 결부시켜 평가 하곤 한다. 사회생활을 이야기할 때, 사회는 정정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학생들을 파악하는 것은 편협한 시선 속에 머물러 올바로 성장하지 못한채, 자신의 잠재력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는 결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편견의 틀을 만들지 않는 것, 이것이 색칠되며 쓰여져야 할 주요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