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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대 Dec 18. 2016

관점. 내 본 모습을 지키고 싶어.

사람들은 대개 자기다움을 지키고 싶어한다.

나만의 가치와 삶을 침해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대체 나다움은 어디까지인가?

나는 어떻게 규정되어질 수 있고 나의 어떤 모습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인가?

내 모습이 나 스스로와 타인에게 부정당한다라고 했을때 그 부정의 기준은 어디까지인가?


사람의 삶을 관찰해보면 살아가야하는 환경은 매번 바뀌고, 매번 다른 사람들이 내 삶에 끼어들어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때그때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순간들이 다가오고 그때그때 우리는 적응해야 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인간의 본성에 '필요에 따라 학습하고 변화하는 것'와 '적응하는 것'은 필수적이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근래 그 적응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을 부정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안다는 것과 별개로 그것을 자기 모습에 대한 부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바람직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새롭게 만들어 내거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는 것까지 자기 부정에 포함시키고 그것을 거부한다라고 하면, 그것이 바람직하다라고 하면 결국 인간은 태어나자마자의 모습과 인지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무언가에 새롭게 적응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정한 것이지 않을까? 

 변화와 적응이 부정하게 비춰진다면 인간은 매우 나약해 질 것이다. 곧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삶이란 것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또 하나, 내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변화시키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적어도 한가지는 아닐 것이다.


진짜 모습이라고 하면 내 모습과 성격들 중 가장 변화시키지 않고 싶어하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여러개일 수 있다. 그리고 변할 수 있다. 절대적이지 않다.

자신의 본질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변할 수 있고 더 많아질 수 있다.

하나로 규정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자기 삶을 폐쇄적으로 옥죄는 족쇄가 될 수 있다.

반드시 지키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있다면 그것이 지금의 자기다움 일 것이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변화시키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그런 것은 얼마든지 변해도 되는 것이며 자기다움을 구성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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