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자 C Oct 16. 2024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뻐하며

   지난 주 밥을 먹다가 뉴스 속보로 나오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숟가락을 놓고 바로 이 소식을 몇몇 지인에게 공유하며 기뻐했습니다. 책장에서 한강 작가의 책들을 꺼내다 난 화분을 엎어 발가락을 찧었는데 아픈 줄도 모르고 책 찾기에 바빴죠. 네 권의 책을 찾았는데, 주기적으로 일정량의 책을 정리하는 터라 남아 있는 책은 『흰』, 『작별』, 『작별하지 않는다』, 『희랍어 시간』이었습니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는 빌려준 것인지 중고로 처분한 것인지 끝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더 놀랐던 것은 현재 듣고 있는 대학원 강의에서 발표 자료를 준비하며 『채식주의자』를 예로 들었는데 그 자료를 업로드하고 발표를 며칠 앞둔 상황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발표하며 박수도 받았습니다. 수상 소식이 들려온 다음 날 주식시장도 들썩였습니다. 출판사와 서점 주가가 무분별하게 폭등했는데 한강 작가와 무관한 종목들이 마구 오르는 건 조금 위험해 보여 가지고 있던 종목 하나를 팔아버렸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발표도 잘 끝냈고 수익도 봤으니 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경사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들도 들려 왔죠. 과거 문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부족한 이들이 이분의 책들을 '교육적'이라는 이유로 금지시키거나 폐기를 요구했던 사실, 심지어 작가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집요하게 배제시키고 불이익을 주었던 사실 들이 다시 거론되며 부끄러운 우리나라 문화 정책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심지어 역사 왜곡 소설이니 다른 나라 작가가 받았어야 했다는 참담한 말을 입에 담는 이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역사관이 어떻든 그걸 공공의 장에서 발언할 때에는 최소한 그것이 누군가에 대한 혐오발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대사의 비극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그려낸 문학 작품을 두고 역사 왜곡이라 말하는 이들은 조선 시대의 역사관에서 이제 현대의 역사관으로 업데이트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출판계가 활기를 찾는 분위기에서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평소 책을 읽지 않던 분들이 한강 작가의 책을 시작으로 독서에 입문하려는 것입니다. 영화로 바꾸어 말하면 노벨 문학상 수상작은 예술 영화와 같습니다. 대규모 상영관에서 상영하는 상업 영화나 대중 영화를 즐기는 분들이 소규모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예술 영화에서 재미를 못 느끼듯, 순수문학 작품들은 어느 정도의 감식안이 없으면 아무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문학 작품을 줄거리 중심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 분들에게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기괴하고 불편하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왜곡 소설이니, 비교육적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예술이 그렇듯 문학은 내용과 형식이 모두 중요하며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한 예술 장르이기도 합니다. 내용이 주제나 줄거리를 말한다면 형식은 플롯, 시점, 문체, 어조, 비유나 상징을 포함한 수사법 등을 말합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낼 수 있죠. 같은 역사적 사건이라도 가해자나 리더 계급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과 피해자나 소수의 시점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또 표현 도구인 언어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달라지겠죠. 그런데 이를 모두 무시하고 줄거리 하나로 작품을 이해하며 비교육적이라고 단정짓는 행태야 말로 비교육적입니다. 진정 자녀들이 수준 높은 문학 작품을 즐길 줄 아는 독자가 되기 바란다면 이런 작품들을 성교육에 유해하다거나 역사 왜곡 운운하며 금지하기보다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문해력을 갖춘 뒤여야겠죠.


   책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게 성과 폭력을 간접 경험하고 그에 대한 경계나 메타인지를 키울 수 있는 미디어입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불편하다, 모호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불편함과 모호함이야말로 어쩌면 문학 작품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그 불편함이 성이나 폭력성에 대한 경계심을 자극할 것이고, 그 모호함이 작품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의미를 창조해 내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무분별하게 성적 코드를 남발하고 폭력성을 미화하는 콘텐츠이지, 이에 대한 거리를 두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아닙니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우리나라 출판계와 독서인들, 문화계에 엄청난 축복입니다. 개점 휴업이나 다름 없던 인쇄소들이 밤샘 근무를 하며 책을 찍어 내고, 서점들의 매출이 급증했으며 우리 문학과 한국 작가들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이 분위기가 독서율 상승으로 이어지기를,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기를 기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