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숲을 지키기 위해 나무에 자신의 몸을 묶고 벌목꾼들의 전기톱에 맞서 싸운 인물이 있었습니다. 브라질에서 고무채취 노동자로 살아가던 치코 멘데스입니다. 그는 고무채취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열 살이 되기도 전부터 아버지처럼 아마존의 고무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노동자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화학 고무가 개발되면서 천연 고무 수요가 급감하자 브라질의 열대우림은 축산업으로 업종을 전환하기 위해 대규모 벌목을 시작합니다. 16세기 유럽인들이 발을 들여놓은 후로 아마존은 줄곧 눈물의 땅이었지만 숲을 없애는 것은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생계 수단을 없애는 일이었죠. '세렝구에이우'라 불리는 고무채취 노동자들은 숲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고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 치코 멘데스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1989년 12월 불법으로 벌목을 자행하던 축산업자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칠레 출신의 행동하는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치코 멘데스에게 바친 소설입니다.
이 책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반독재 투쟁을 벌였고, 유네스코 기자이자 환경운동가, 여행가, 남미를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다채로운 이력을 가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라는 동화가 출간되면서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초등5학년 국어 교과서 수록되면서 국민 동화 반열에 오르게 되었죠.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1989년 출간된 뒤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오늘날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열린책들에서 2001년에 펴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가 바로 연애 소설 읽는 노인입니다. 그는 불임 문제로 고민하다 아내와 함께 엘 이딜리오로 이주합니다. 아마존 유역을 개발하기 위해 정부가 이주를 권장하기도 했고 기후와 토양이 바뀌면 불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엘 이딜리오에서 직면한 현실은 가혹하기만 했습니다. 정부의 지원은 서류 한 장과 2헥타르의 밀림, 간단한 도구 몇 가지와 벌레 먹은 씨앗 두어 자루뿐이었죠. 게다가 허리가 휘도록 나무와 풀을 뽑아도 다음 날이면 또 자라나는 왕성한 생명력이 그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무시무시한 우기가 찾아오면 그는 모기와 굶주린 짐승들의 위협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가 아마존을 푸른 지옥으로 느낄 무렵 수아르 족 인디오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밉니다. 호세 볼리바르는 그들에게 아마존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술들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뱀에 물려 사경을 헤매던 그를 살려낸 것도 그들이었죠. 뱀에 물렸던 경험은 그의 몸에 선명한 상처와 다시 뱀에 물리더라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독기를 남겼습니다. 이제 그는 개간자에서 밀림의 일원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마치 미셸 투르니에가 패러디한 로빈슨 크루소처럼.
한편 밀림에도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습니다. “무지막지한 문명이 서쪽으로부터 아마존의 거대한 몸집을 파헤치며”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죠. 백인들은 농장을 만들기 위해, 금을 찾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고 전기톱을 휘둘렀습니다. 이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총을 쏘았죠. 결국 원주민들과 짐승들 모두 새로운 거처를 찾아 밀림 깊숙한 곳으로 쫓겨 가야만 했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짐승들은 점점 맹수로 돌변했고 원주민들도 그들의 방식대로 저항합니다.
주인공 호세 볼리바르 영감은 거칠기만 한 아마존의 자연과 탐욕에 눈이 멀어 잔혹한 행위도 서슴지 않는 백인들 사이에서 중간자적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개척자로서 아마존에 이주해 왔지만 수아르 족의 삶에 동화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는 결코 백인 개척자들의 탐욕에 동조할 수도 없었고, 수아르 족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야생의 삶을 사는 원주민들이나 탐욕과 폭력의 노예가 된 백인 개척자들의 모습은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서로 대척점에 놓여 있는 야만성이라 볼 수 있었습니다.
호세 볼리바르에게 안식을 주는 연애 소설을 읽기는 독자들이 따라해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그는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을 정도로 읽기의 초보였는데 이것이 오히려 읽기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음절과 단어, 문장을 차례대로 읽으며 그 구절의 아름다움과 필요성이 몸으로 느껴질 때까지 반복해 읽습니다. 물론 묵독이 아니라 낭독이었죠. 작가는 밀림 속 작은 오두막에서 연애 소설을 낭독해 읽으며 감격하는 노인의 모습을 거칠고 폭력적인 ‘야만성’과 대비되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주인공을 둘러싼 무수한 에피소드의 가지들은 살쾡이 사건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모여듭니다. 살쾡이와 백인들, 그리고 주인공과의 싸움 속에는 문명과 자연의 대립 구도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주제의식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살쾡이와 주인공의 대결은 한쪽을 죽여 다른 한쪽이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름답고 경이로운 생명이 야만적인 백인들의 손에 유린되지 않도록, 어느 쪽도 승리할 수 없는 명예롭지 못한 싸움으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결이었던 것이죠.
이 힘겨운 싸움을 마친 주인공은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 자들을 저주하며 자신의 안식처로 돌아갑니다.
“엘 이딜리로를 향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힘겨운 일상을 보내며 책에서 위안을 얻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인공 호세 볼리바르처럼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을 낭독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