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0년 만이다!

by 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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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대 때 등산을 즐겨 다녔다. 이산 저산은 아니었지만 백운대만큼은 많이 올랐었다 자신하곤 한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요즘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관음봉에 올라서게 되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얼굴로 가는 혈관은 그 힘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나의 얼굴은 완숙미를 가득 머금은 붉은 토마토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혈색 하나만큼은 끝내줬으리라!

오랜만의 산행은 진정 나와의 싸움이었다.

언제든 오르는 것을 멈춘다 해도 그때의 내 몰골을 본 누군가들은 이해해 줬을 것이다. 함께 산에 오른 내 일행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아 등산 막바지에는 그 친구에게 그대라도 먼저 오르라 하며 보냈지만, 사실은 조금 느린 걸음이라도 멈추지 않아 기어이 관음봉이 있는 세상을 가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저 사진은...

그 마지막 구간을 향해 마주했던 순간에 하늘로 뻗은 나무의 수관들 사이에서 만난 태양의 모습이었다. 가지에서 돋은 대로 흩날리는 나뭇잎들 사이사이로 그 빛들이 나를 향해 마중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숨에 헐떡이고 마른 입안에서 단내가 났지만 그때만큼은 내가 나 이상의 무언가를 품은 신비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결국엔 내가 올라왔구나!

그 전날부터 줄곳 나는 결국에 정상에 오를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이 날 날씨는 또한 좋아, 산에 오르던 내내 나의 장딴지를 작살내려는 듯 자비 없이 층층이 가파른 오르막을 형성하고 있던 돌계단들과 인내심을 끊임없이 시험했던 길고 긴 나무 계단들과 달리, 정상에서 본 그 풍경은 그곳부터 저 아래 멀리 인가까지 완만히 이어진 계곡들로, 폭신하고 포근한 가을의 초록빛으로 고요히 미끄러져 내려가는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 낮의 별빛인 듯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쉴 새 없이 소곤대듯 반짝였다.

신선은 어째서 신선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사람 사는 세상이 그토록 작고 고요해 보여서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모든 일들엔 양가감정이 든다.

양쪽에서 맞닿은 힘들이 줄다리기를 한다.

잠시의 경험을 위해 나는 어떤 결심을 하고 올라서는 데만 2시간이 넘는 곳을 알면서도 힘겹게 올라섰다.

그곳에 머물렀던 건 10분 정도였을 텐데 말이다.

그 10분을 위해 10년 만에 어떤 정상을 찍어보고 싶은 그 마음을 위해 해야 했던 어떤 결심은 등산로 중 가장 만나기 싫은 나무 계단(그 계단을 설치하시느라 고생하신 분들께는 무한 감사합니다!)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해야만 했다. 길은 낯설고 거칠었기에 육신은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었지만, 그래서 정신은 하나를 위해 모일 수 있었다. 거창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산에는 분명 삶과 죽음의 경계가 보다 확고하게 느껴졌다.

사실 요즘 나는 기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한 기분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저런 마음들에 대한 생각...

눈앞에 빈 도화지를 보면 움츠러들었던 이유들에 대해... 하지만 정작 그 빈 도화지는 나였더라는 것.

늘 어떤 주인공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 주인공이 실은 여백이 아닌 그저 비어있는 '나'였다는 알 수 없는 생각도 함께!

그 실체를 모른다고 여겼지만, 눈앞의 흰 도화지가 몹시도 괴로웠던 그 이유가 스스로를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깨달음이 나를 성큼 삼켜버렸다.

그래서 또한 그러한 기분에 요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다음 생에선 꼭 한량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속으로 어찌나 주문을 외웠던지... 바람만 있고, 실체는 없는 공식만 있고 답은 알 수 없는 기이한 기약의 습관처럼...


하지만 덕분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음에 관해서 솔직해지게 되었다.

늘 무언가 많은 것들에 휩싸여 아무리 해도 결과는 없는 삶이라고 부렸던 분노는 정상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저 붉은 물감이 몇 방울 튄 정도일지도 모른다. 울창한 산 아래의 많은 것들은 서로 엉키고 성기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이미 벅찬 것을 애써 비워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어떤 것을 피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결국 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상으로 수렴하게 만들었다. 가득한 파랑이 순식간에 나를 덮쳐 버린 듯이.

그러나 이런 생각이 다시 나를 산으로 인도했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음'은 '관점'이 변화되길 바라는 무의식의 의지를 의식 밖의 표현으로 투영한 것은 아닐까?

크던 작던 상관없지,

'나'는 크기로 존재하지 않아. 길가의 작은 돌멩이도 누군가에겐 거대한 돌산이 될 수 있듯이...

가능한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멀고, 가까운 것... 사실 모든 것은 내가 의식하는 거리상에 비례한다고.

어떤 결과를 바라고 다가서는 미래는 결국 과거의 환영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 현상은 다시 나를 그 어떤 것을 하도록 인도하였다.

결과는 과정 속에서 어떠한 감정 상태를 연출하며 한 편의 서사로 남을 뿐... 나는 그것에 지치면 지금처럼 살짝 미쳐보고 싶은 마음에 다시 산이든 바다든 떠나려고 할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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