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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Dec 31. 2023

군대도 아닌데 6분 컷 샤워하기

뉴질랜드 로드트립 - 아벨타스만

  뉴질랜드 곳곳에는 수려한 자연 속의 트레킹 코스들이 '그레이트 로드'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 장엄한 풍경도 풍경이지만, 긴 코스라서 전체를 완주하려면 길에서 몇 박을 하며 트레킹을 해야 해.

 나는 운동이나 체력이랑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완주는 꿈도 꾸지 않고 몇몇 코스들에 살짝 발만 걸쳐봤어. 한두 시간 걸어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방식으로 말이야. 그 중 하나가 아벨타스만 트레킹 코스야. 그레이트 로드 중에 가장 쉬운 길이래.

 산보다 바다, 숲보다 호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벨타스만 트레킹 코스는 대만족이었어. 걷는 내내 수풀 틈새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거든. 가끔 나있는 샛길을 따라가면 해안가의 모래사장이 나와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돌아올 수도 있었어. 숲길을 걷는 동안 밀물과 썰물의 흐름도 볼 수 있었고.

 아벨타스만 국립공원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근처 캠핑장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어. 캠핑장 바로 옆에는 트레킹 내내 보던 그 바다가 펼쳐져 있었어. 캠핑장에서 요리를 한 다음에 냄비째 들고 바닷가에 앉아 밥을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인 곳이었지.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샤워장이었어. 뉴질랜드의 많은 캠핑장들은 온수 사용에 제한을 두고 있거든. 5분마다 버튼을 눌러야 한다거나, 5분 동안 온수가 나온 뒤에 찬 물이 3분 나오는 식으로. 이곳은 동전을 넣어야 온수가 나오는 시스템이었는데, 가지고 있는 현금이 1달러 밖에 없었어.
 

 1달러로 가능한 샤워 시간은 6분. 나는 '쪄죽따'파라서 푹푹 찌는 여름에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데다가, 샤워를 길게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야. 어릴 때부터 나 때문에 온수 급탕비가 많이 나온다고 수없이 잔소리를 들었는데도 샤워 시간을 줄일 수가 없더라고. 이런 내가 6분 만에 워를 끝낼 수 있을까?

 시간을 알차게 쓰려고 동전을 넣기 전에 옷을 벗고 머리를 빗었어. 낮에 트레킹을 하는 동안 땀을 흘렸기 때문에 머리까지 감을 수밖에 없었거든. 모든 준비를 마치고 1달러를 넣었더니 360초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하더라고. 째깍째깍 줄어드는 숫자를 보면서 미친 듯이 샴푸 거품을 냈어. 사실은 거품을 문지름과 동시에 물로 헹궈버렸어. 타이머의 숫자가 너무 빨리 줄어드는 것 같았거든. 머리도 몸도 대충 씻고 세수만 꼼꼼히 했더니 40초가 남더라고. 마지막 40초 동안 전체적으로 물을 뿌리고 손발을 닦아냈어. 발을 씻는 동안 삐-소리가 나면서 찬 물이 쏟아졌지.

 샤워를 정말 대충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개운한 느낌이 드는 게 신기했어. 6분 안에 모든 것을 끝낸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하기까지 했지. 동전들을 모아서 당장 이익을 얻는 건 캠핑장이겠지만, 이 노력이 나에게도 선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테니까.

 캠핑장 이용료를 냈는데 샤워장에 또 돈을 내야 하는 시스템이 이해가 안 된다는 리뷰에 답글이 있었어.

 "동전 샤워는 물과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아벨타스만과 지구를 지켜 주세요."



오늘의 과학
 표준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은 1분 당 8L입니다. 6분 동안 샤워를 하면 48L, 20분 동안 샤워를 하면 160L의 물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샤워 시간을 줄이는 것은 단순히 물을 아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정수 처리된 물을 각 가정으로 보내고, 사용한 물을 하수 처리하기 위해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 과정에서 온실 가스가 배출됩니다. 20분 동안 샤워를 한다면 1년에 약 20kg의 온실 가스를 배출하게 되지요. 놀랍게도 이 수치는 찬 물로 샤워했을 때의 배출량이고, 온수 샤워에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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