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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Jan 07. 2024

김치를 싫어하는 한국인의 김치토스트

뉴질랜드 로드트립 - 넬슨, 픽턴

 남섬 여행의 마지막 도시 넬슨에서 아주 불쾌한 경험을 했어. 로드트립을 하는 동안 캠핑장이나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는데, 호텔을 잡지 않은 것은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야. 에어비앤비로 방 한 칸만 빌리면 실내 취침을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데다가 부엌에서 요리를 해 먹으면 식비까지 절약할 수 있거든.


 넬슨에 도착한 , 즉시 예약이 가능하다는 에어비앤비를 결제했어. 확정 메일과 함께 도어벨을 누르라는 안내까지 받았지.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호스트가 잘못 설정해 둔 것이고, 사실은 손님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잘못은 아니었는데, 호스트는 우리를 불청객 취급하며 불쾌하게 대응했어. 방에 너저분하게 널린 빨래를 뒤늦게 치우면서 미안해하기는 커녕 불평을 계속했지. 바다 전망의 발코니가 그 집의 광고 포인트였는데, 발코니에 가려면 호스트 전용 거실을 지나가면서 호스트의 짜증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에 방에만 갇혀 있었어.


 불편하게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이 밝았어. 에어비앤비에 조식 포함이라고 안내되어 있기에 일어나자마자 물어봤지. 호스트는 마음껏 짜증 낼 기회라도 잡은 듯이 화를 내기 시작하더라고. 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가 조식을 먹냐면서 정말이지 무뢰한 취급을 했어. 오전 10시라 그렇게까지 화 낼 시간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빵을 먹을 테니 토스트기만 사용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그것조차 거절당했어.


 우리는 그 집에 이틀을 예약했기 때문에 다음날 조식에 대해 다시 물어봤어. 그랬더니 갑자기 조식 서비스가 아예 없다는 거야. "조식 포함"이라고 분명하게 나와 있는 에어비앤비 화면을 보여줘도 본인은 그런 내용을 쓴 적이 없다며 화를 내더라고. 더욱 황당했던 것은 그다음 대응이었어. 조식 문구를 쓴 적도 없다고 우기더니, 몇 시간 뒤 몰래 "조식 포함" 문장을 삭제해 버렸더라고.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고객센터에 항의 글을 남겼어. 예약할 당시 캡처해 둔 화면과 현재 바뀐 화면을 첨부해서 상황을 설명했지. 그리고 두 명의 이틀 치 조식 비용을 환산하여 40달러를 환불받았어. 일부 금액을 돌려받긴 했지만 영어로 다투던 과정에서 너무 지쳤고, 호스트의 대응이 불쾌해서 넬슨이라는 도시 자체가 싫어져 버렸어.


 우리는 아침을 굶은 채 곧장 넬슨을 떠나서 픽턴으로 향했어. 픽턴에는 우연히 알게 된 김치토스트 맛집이 있거든. 송송 썰린 김치와 치즈가 빵 사이에 들어가 있는 토스트야. 빵과 김치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조합인데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너무 맛있더라고. 김치토스트가 뉴질랜드에서 우리의 소울 푸드가 되어서 몇 번이나 찾아갔어.



 사실 나는 김치를 싫어하는 한국인이었어. 어릴 때도 성인이 된 후에도 김치만 빼고 급식을 담는 한국인. 지금 생각해 보니 예측할 수 없는 맛이 나는 게 싫었던 것 같아. '김치'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재료나 숙성 기간에 따라서 집집마다 맛이 천차만별이잖아. 그 맛이 불호일 때가 있다 보니 김치에 아예 손을 안 대게 된 거지. 김장 김치를 냉장고에 넣어 두면 김치가 숙성되면서 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싫었어. 김치를 담았던 통에 베인 냄새가 절대 빠지지 않는 것도.


 뉴질랜드에서 김치토스트를 맛본 후에는 한인마트에서 김치를 사 먹기 시작했어. 공장 김치는 정해진 공정을 거쳤기 때문에 늘 보장된 맛이 났어. 적당한 숙성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냄새도 조금 덜 했고, 통은 버리면 되니 걱정할 게 없었어. 식빵과 소고기를 주식으로 삼다 보면 가끔 밥이 그리워졌는데, 그럴 때 쌀밥과 김치를 먹으면 속이 편안해졌어. 냄비로 지은 흰 쌀밥을 한 숟가락 푹 퍼서 김치를 올리고 김에 싸 먹으면 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 뚝딱이었지. 김치를 먹으면 개운해진다는 한국인의 소울을 드디어 이해하게 된 거야.


 뉴질랜드로 떠나오지 않았더라면 김치의 맛을 절대로 몰랐을 거야. 예전에는 밥상에 달랑 김치만 두고 김치가 제일 맛있다며 밥을 먹는 엄마 아빠가 궁상을 떠는 줄만 알았거든. 그런데 진짜로 김치랑 쌀밥이 제일 맛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한국으로 돌아가서 공장 김치가 아니라 누군가 직접 담근 김치를 먹으면 또 어떨지 모르지만, 아무튼 오늘은 김치토스트가 우리의 쓰린 속을 뚫어줄 거야.



오늘의 과학
 김치는 대표적인 발효 식품입니다. 미생물이 호흡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유익한 부산물이 생성되는 것을 발효라고 합니다. 김치가 숙성될 때 젖산균이 당분을 분해하면서 시큼한 맛을 내는 젖산이 생성되지요. 오래 묵은 김치가 신 김치가 되는 것은 그만큼 젖산이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김치에는 젖산균 외에도 다양한 미생물이 있는데, 보관 조건에 따라 미생물의 번식이 달라지므로 김치 맛이 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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